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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2. 2021

탕수육 먹을 때 찍먹이냐 부먹이냐

일상 에세이


탕수육을 먹을 때 찍먹이냐 부먹이냐, 이걸 가지고 상반된 두 의견이 대립을 한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산이냐 바다냐, 대실이냐 숙박이냐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힘든 문제라고 한다. 탕수육을 일 년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한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는 힘드나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건 기호의 문제고 상반된 두 사람이라면 대립이 가능하다. 그런데 탕수육을 주문해서 반은 찍어 먹고, 반은 부어 먹으면 되지 않을까.


찍먹이냐 부먹이냐는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문제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보통 택시를 잡아서 타는 사람들은 평소에 택시비가 너무 아깝다. 악착 같이 택시비에 집착을 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택시를 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별거 아닌데 이 별거 아닌 게 별거 아닌 게 아닌 것이다. 그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파게티를 먹을까 피자를 먹을까, 같은 고민이 아니다. 탕수육은 반으로, 또는 삼분의 일로 분할이 가능하기에 부먹, 찍먹의 고민은 매체를 통한 언어유희로 끝나야 한다.


많은 책과 명언에서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에 차서 하루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벤트가 일어나는 하루는 거의 없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은 오늘처럼 흘러가리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오히려 호러블 하게 보내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또 재미라고는 1도 없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라고 시작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전혀 기대가 없는 가운데 어떤 작은 이벤트가 일어나면 그건 정말 행운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희망 고문 같은 낙관보다는 낙관적이지 않은 비관에 가까운 의식을 가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탕수육을 작년에는 한 번도 안 먹었고 올해도 아직 한 번도 안 먹었는데 딱히 이유가 있어서이기보다는 그저 손이 가지 않아서 먹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게 부먹이냐 찍먹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부먹 쪽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이다. 김밥으로 하루 세 끼 꼬박 먹어라고 해도, 일주일을 김밥으로 때우라고 해도 나는 큰 소리로 넵, 하며 대답할 수 있다.


김밥이라는 음식을 먹을 때 전혀 귀찮지 않다. 가시를 발라 먹을 필요도 없고, 구워야 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 쌈 싸 먹을 필요도 없고, 부글부글 끓여 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집어서 입에 넣으면 끝이다. 게다가 칼로리도 높아서 한 줄만 먹어도 몸에 필요한 칼로리는 다 찬다고 한다. 김밥이 너무 좋은 나머지 김밥에 대한 짤막한 소설도 적어 보았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7


한 손으로 김밥을 뜯어먹는다면 다른 한 손은 놀기 때문에 책이 있다면 소설을 보면서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음식인가.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귀찮은 음식들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져먹고, 구워 먹고, 발라먹고 하는 음식들은 전부 귀찮다. 남들이 죽고 못 사는 ‘게’ 요리는 아주 질색이다.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서 발라 먹어야 하는 삶은 게 요리는 맛을 떠나 너무 귀찮다. 남들은 그 재미로 먹는다는데 나는 도통 그 재미에 도달하지를 못 한다. 주문하면 숟가락 들고 그냥 딱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좋다. 주문하면 탁 나오는 치킨, 족발, 수육, 카레, 칼국수, 스파게티, 빵, 삼계탕 이런 음식이 좋다.


그래서 탕수육을 먹을 때 굳이 찍어 먹기보다는 한 번에 부어 놓고 먹는 게 나는 더 낫다. 사람들은 탕수육을 바삭하게 먹어야 한다, 소스 맛을 즐겨야 한다, 같은 말들을 하는데 나는 다 거기서 거기다. 눅눅해도 탕수육은 맛있고 바삭해도 탕수육은 맛있다. 그래서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가 없어서 그냥 간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간장이 없어도 상관없다.


맛으로 따진다면 눅눅해지면 탕수육 맛이 떨어진다는데, 그리하여 찍먹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눅눅해도 맛있는 탕수육이 맛있는 탕수육이 아닐까. 눅눅해졌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면 그 집 탕수육은 맛이 없는 게 아닌가. 갓 나온 탕수육이 맛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갓 나온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있나. 오죽하면 튀기면 신발도, 지우개도 맛있다는 소리가 나올까. 시간이 지나 식어도 맛있는 탕수육이 진짜 맛있는 탕수육이다. 커피도 그렇다. 식어도 맛있는 커피가 있다. 그런 커피가 맛있는 커피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lF1ZSXGL_Sw

시대유감은 2002 ETPFEST에서 부른 버전이 가장 좋다. 서태지의 패션도 좋고, 선그리도 좋고, 헤어도 좋고 무엇보다 목을 긁어서 강하게 내는 소리로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좋다. 시대유감에서 서태지는 두 개의 달을 하늘에 띄워 올렸다. 하루키의 일큐팔사에서 두 개의 달 보다 훨씬 전이다.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라고 외쳤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정부에서 가사가 해가 된다고 해서 개사를 해서 음반에 싣길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유감은 음반 발매가 안 되었다. 정부가 예술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서태지는 서태지 굿바이 앨범에 가사를 빼고 음만으로 시대유감을 발표했다. 후에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앞으로 예술은 정부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며 시대유감에 가사를 넣어서 음악을 발표하게 했다.


가사에는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올 기미도 안 보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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