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너의 그 푸르른 힘으로 고달픈 시절을 버텼다'라고 윤대녕은 '어머니의 수저'에서 고등어를 말했다.
루시드폴은 고등어를 노래 불렀다.
고등어구이에는 내 어머니만의 맛이 있다. 구운 듯 튀긴 듯 고등어구이. 그 맛에 산울림도 고등어를 노래 불렀다.
저녁놀이 저 하늘을 뒤덮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면 골목에 퍼지는 고등어를 굽는 냄새는 코를 자극했다. 아침의 계란 후라이 냄새보다 더 사람을 잡아당기는 냄새, 연탄 불위에서 적세(석쇠)에 고등어를 끼워 엄마가 구워대던 고등어의 냄새. 그 냄새가 골목을 타고 동네에 퍼지면 이제 아버지의 퇴근이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동생과 함께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간다. 이 버스, 저 버스를 기웃거리며 아버지가 내리나 안 내리나 동생과 내기를 한다. 아버지가 한 버스에서 내리면 동생은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안긴다. 작업복 냄새. 아빠, 오늘 엄마가 고등어 구웠어. 그래? 맛있겠네, 어서 가서 먹자. 아빠가 가시 발라줄게.
서슬 퍼런 가난이 불편하게 우리 집에 들러붙어있어서 매년 연탄가스 때문에 개근상을 한 번도 못 탔지만 그 사이를 벌리고 들어와 우리를 지탱하게 해 준 것들 중에는 고등어 구이가 있었다. 불행은 연탄 때문이지만, 연탄 위에서 고등어를 구워야 맛있다는 어머니. 그렇게 연탄에서 나오는 가스를 마시며 시간을 견뎌왔다.
요즘처럼 예쁜 접시에 각종 소스와 레몬은 곁들이지는 않았지만 투박하게 올라온 고등어구이는 가족의 저녁을 책임지는 한 끼의 주인공이었다. 루시드 폴의 가사에서처럼 고등어구이는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을 책임졌다.
산울림이 노래한 것처럼 전날 절여놓은 고등어를 굽는 냄새가 퍼지는 일요일 아침은 행복했다. 된장찌개와 함께 거실의 볕이 드는 곳에 놓은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게도 고등어를 뜯어먹었다. 이렇게 아침 한 끼를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그 시간만큼은 불안도 없고 걱정도 없었다.
요즘은 계절의 경계가 지우개로 문대듯 흐려졌지만 꽁치와 함께 가을의 음식이 고등어다. 고등어구이를 올려 야무지게 밥을 먹었던 조카를 보면 묘하지만 꽤나 기시감이 든다. 그리고 반달눈을 한 채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도 예쁘다.
누군가 고등어구이를 먹다가 훌쩍인다면 어머니가 생각나서일 테니 그럴 땐 왜 그러냐 묻지 말고 밥숟가락 위에 고등어 한 점 뜯어서 놓아주자. 그 옛날 어머니가 내 밥 숟가락에 고등어를 놓아준 추억이 떠올라 행복해할지도 모르니까.
들어보자 루시드 폴의 고등어 https://youtu.be/vTOLyOlVC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