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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8. 2021

하루가 고될 때 된장국을 끓인다

된장국 추억

하루가 고될 때 된장국을 끓인다


하루가 고될 때는 언제일까. 나에게 있어 고된 하루라는 건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한 날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거나 끈적끈적한 불안 속에서 보낸 날이다.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 때문에 신경을 써버리면 물도 소화를 못 시킨다. 그러면 뒤 따라오는 증상이 부정맥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위장을 잘못 달고 태어나면 이런 문제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에는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회사를 다니거나, 누군가와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수순처럼 회사는 제대 후 잠깐 아르바이트처럼 몇 달 한 것이 고작이고 사람들과의 식사도 줄어들었다. 다행이라면 술자리에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술자리는 식사자리보다는 길게 끌고 가니까.


불안은 잠에서 깨어나면 따라붙는다. 잠이 들기 전까지 조금씩 증식하다가 잠이 들면 같이 잠이 드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이 깊이도 알 수 없고 고고(높고 오래된)한 불안이 잠이 들어도 따라다닌다. 그러면 어김없이 꿈에서 기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쩌다가 불안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러면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그것 때문에 불안하다. 불안해서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 불안이라는 것은 나의 위장장애처럼 평생 같이 달고 가야 할 동반자라고 받아들였다.


어린이 때처럼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최선을 다해서 보내고 싶은데 내일이 오기 전에 내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불안해한다. 매일 언론에서는 불안을 감추려고 불안한 뉴스가 나온다. 그 속에 내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이 머지된다. 먹고사는 것, 생존과 생계도 불안하다. 오늘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견뎠지만 오늘 이후에는 자신이 없어진다. 불안한 것이다. 이런 불안이 갈비탕을 먹고 남은 미미한 찌꺼기 같은 것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불안에 떨다가 집으로 들어온 날은 하루가 고되다. 많이 힘들다. 이런 날은 된장국을 끓인다. 된장국은 쉬운 문제다. 된장국만큼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실수로 잘못 끓여도 된장국은 된장국이다. 물에 불려 놓은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이면 된다. 복잡할 게 없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고기가 있기에 그대로 같이 넣어서 끓여버렸다. 된장국에 보이는 기름은 그래서 생겼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처음 했을 때 몸에 파스를 8개씩 붙였다.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내가 한 첫 아르바이트가 냉장고를 나르는 일이었다. 헤헤 거리며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첫날 하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온몸이 그야말로 몽둥이로 잘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그래서 파스를 8개 붙이고 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오전 8시까지 가야 했고 허허벌판 곳에서 아주 큰 냉동고 같은 차에서 냉장고를 꺼내서 포터나 개인 자가용이 오면 거기에 싣는 일을 했다. 처음에 알바 구해주는 곳에서 일이 힘드니까 첫날 해보고 힘들면 하지 말라고 했다. 다른 알바 자리도 많으니까 다른 거 구해준다고. 왜냐하면 몸이 다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회사도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하니 당시에 꽤 많은 돈이 바로 들어왔다. 몸은 부서질 것 같으나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형들이 좋았다. 텃새도 없고 그저 옛날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무척 친하게 지냈다. 냉장고가 무거워서 내가 너무 낑낑거리면 와서 잡아주었다. 그때 분명 일은 고된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그 고됨이 기분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르바이트는 단발성으로 한 달 정도 하는 일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벌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형들과 같이 걸어 나왔다. 그곳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차로 태워주는데 우리는 그냥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다 보면 기찻길이 있는데 그곳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들처럼 그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 오뎅에 소주를 한잔씩 마셨다. 겨울이었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그 알싸한 기분을 우리는 만끽했다.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온 몸, 세포 끝까지 퍼지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다. 그때 확실하게 몸을 움직여서 얻는 고된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늦은 저녁에 집에 오면 어머니가 된장국을 끓여 주었다. 거기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고 나면 오늘도 해냈다, 같은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된장찌개는 모든 계절에 어울리는데 된장국은 딱 이 계절에 어울리는 것 같다. 아마도 추워지는 날 속에서 늘 된장국을 먹던 추억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시간에 두드려 맞으며 어느새 훌쩍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일을 하며 사람들 틈 속에서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이토록 살얼음판을 걷고 있을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첫 아르바이트를 할 때처럼 몸이 부서지지는 않지만 마음이 조금씩 깨진다. 파스를 붙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조각난 마음을 꿰맬 수도 없다. 내 인생에서 몸이 고생인 건 군대에서 끝이 났다. 몸이 고된 건 그에 따른 결과가 분명하게 난다. 하지만 마음이 고된 건 그에 딸려오는 결과가 명확하지 않다. 불분명하고 추상적이다. 제각각이며 원인도 모르고 그늘처럼 오래 머문다. 마치 불행과 흡사하다.


마음이 여기저기에 부딪혀 고된 날 집으로 오니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고 더 이상 겨울에 몸을 데워줄 된장국도 없다. 그래서 오늘 된장국을 끓인다. 한 숟가락 떠먹으면 위로 까지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예전을 추억하게 된다. 그 따뜻함과 안온감, 그리고 부드러운 포근함. 지금 호로록 먹는 된장국은 몸이 고될 때 먹던 된장국이 주던 위로에서는 멀어졌다.


라디오에서 나온 말인데 어른이란 때로 어딘가를 갈 때 택시를 탈 때 느낀다. 그래 어른이구나, 그래 어른이라 택시를 탈 수 있어서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어차피 어린이로 돌아갈 수 없고 어른도 아닌 이상한 어른이로 죽 살아야 한다면 도망가지 않는 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천천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즐기는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늘 1면으로 실려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주로 어른들일지라도, 조직을 일으키고 단체의 수장도 대체로 어른들이다. 된장을 만들고 시래기를 말리고 하는 것 역시 어른들이 한다. 된장국을 맛있게 먹으며 위로를 받는 것도 어른의 몫이며 누릴 수 있는 약간의 행복도 어른이기에 가능하다.


이미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와 버린 지금 하루가 고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여러 불안과 걱정과 고민 때문에 마음은 고되고 또 고되다. 그럴 때 된장국을 끓인다. 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 먹자.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음식을. 끓이는 동안 된장국의 냄새가 조금씩 나를 감싸고돈다. 냉기가 흐르던 집 안에 온기가 쌓인다. 된장국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오늘의 선곡은 영원한 우리의 제임스 형님, 메탈리카의 낫띵 엘스 메럴 https://youtu.be/tAGnKpE4NCI

이 쩌는 미친 노래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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