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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6. 2021

Sophie 16

소설


16.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때론 편하기도 한 법이다. 테이블 위의 커피에서는 계속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아직 뜨거웠다. 소변을 오랫동안 본 것이 마동 자신의 착각처럼 느껴졌다. 커피는 처음처럼 뜨거웠고 여전히 올라가는 김은 엑토플라즘 같았다. 사람들은 마동에 대해서 전혀 안하무인이었고 치즈케이크도 당연하지만 화장실에 가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동은 손목시계를 봤다. 시간은 화장실에 들어가고 십오 분이 훨씬 지나가 있었다. 카페의 음악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쳇 베이커의 렛츠 겟 로스트 앨범의 음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쳇 베이커도 말년에 얼굴이 변이 했다.     


 쳇 베이커는 자신의 재능을 너무 믿었던 걸까.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쳇 베이커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했지만 그는 약하디 약한 사람이었다. 결국 약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쳇 베이커는 그럼에도 주위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친구의 딸도 있었다. 쳇 베이커는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을 온전하게 남아서 지금 카페의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쳇 베이커의 음악 두 곡을 가만히 들었다.


 시간은 확실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마동은 십오 분이 넘게 소변을 본 것을 자신의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 전적으로 마동은 깊게 개입하고 있었다. 시간을 받아들이는 시점 앞에 마동은 서 있다. 마동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이 증상들이 진실인지, 증상을 느끼고 있는 마동 자신이 실재인지 아니면 자신의 또 다른 무의식에서 만들어 낸 허상인지 구분 짓기가 힘들었다. 마동은 분명하게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에 대한 실체는 인정했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일어난 사실에 진실이 꼭 부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마동의 변이는 사실이었고 진실도 동반했다. 시간을 받아들이듯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또다시.     


 우우우웅.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이명이 들렸다. 소리가 한 곳으로 집약되었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떠돌다가 공(구)처럼 한 곳에 모아둔 것처럼 응축되었다. 웅웅하는 소리는 마동을 굉장히 힘겹게 만들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눈이 흐리게 보이는 것만큼 힘들었다. 등을 소파에 깊게 파묻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명을 피할 수는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우웅 웅웅 하는 응축된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소리가 커질수록 잡음이 강한 외계 언어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언어는 바늘처럼 뾰족하고 아팠다. 마동의 무의식의 주파수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닿으려 했다. 주파수가 맞아지는 지점까지 모든 소리는 한 곳에 집약되어서 쌓였지만 형태가 잡히지 않아서 마동을 힘들게 했다. 이명은 알아들을 수 없는 활자의 조합으로 카페 안의 공간에 흘러 다니다 마동의 귓전으로 전부 박력 있게 날아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우우웅 우우우웅.  

   

 이해할 수 없었고 기계로 만들어진 벌레가 서로 몸을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려 마동은 멎었던 두통이 밀려왔다. 쇠줄로 머리를 동여맨 다음 두 명의 여자가 힘껏 잡아당겼다. 마동은 에어컨이 힘 있게 나오는 카페 안에서 이틀 동안 흘리지 못했던 땀을 흘렸다. 땀이 이마와 콧등에 맺히더니 볼을 타고 흘렀다. 등에도 한줄기 땀이 흘렀을 때 눈을 감았다. 마동은 사막의 돌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병원에서 이곳으로 뛰어오면서 맞은 빗물이 이제야 흘러내리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결코 그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땀이다. 확실하게 땀이었다. 이틀 만에 만나는 땀이다. 땀을 흘려 기분이 나아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땀치고는 개운하지 않은 땀이다. 지금 마동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땀은 조깅을 하면서 흘리는 땀과는 차이가 있다. 이 땀은 한 마디로 조약 되어있는 어둠 같은 땀이었다.     


 불순물이 잔뜩 껴 있는 어둠. 탁하고 더러운 색이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어떤 빛도 허용되지 않는 어둠. 사람들을 사고로 몰고 가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어둠과 같은 땀이 마동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흘러내리는 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촉의 땀이었다.      


 집약된 혼란스러운 어둠.    

 

 비참하고 불쾌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묽지도 않고 냄새가 많이 나는 미움의 땀이었다. 그리고 그때.     


 -넌 내 앞에서 계속 남친 자랑 질이냐, 이야기 좀 안 했음 좋겠는데 젠장-     


 -이년이거 내숭은, 정말 꼴불견이네. 오늘 밤 같이 자고 나면 헤어져야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입으로 내는 구어처럼 정확하게 들렸다. 생각이 언어처럼 확실했다. 사람들은 보이는 얼굴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끄럽고 싫다. 이 많은 손님은 필요 없다. 적당한 손님. 조용한 손님이 좋다. 어차피 나는 받는 월급은 일정하다. 커피에 대해서 더 파고들고 싶은데 이래서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싫다 정말- 바리스타의 생각도 들렸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더러운 땀을 닦을 때 기계적 이명은 마침내 소리로써 정확하게 마동의 귀에 들어왔다. 의식에 닿아 있는 소리는 떠돌다가 목적지가 있는 바람을 타고 움직여서 마동에게로 닿았다. 어지럽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흩어지지도 않았다. 40대 카페 점원의 생각이 들렸고 여대생 두 명의 생각과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커플 중 남자의 생각이 들렸다. 미소 짓는 얼굴과 생각의 미소는 모두가 조금씩 달랐다.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에는 어떠한 관념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있는 저 먼 곳에서 치누크가 몰고 온 무의식이 여기 세계에 들어와 전후를 바꾸어 놓은 것일까.     


 치누크가 몰고 온 기이한 냄새와 그 풍향을 느끼고 어느 순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야외에서 교접한 후 급격하게 변이가 찾아왔다. 여름의 끝자락에 두 개의 가을 태풍이 몰아쳐오듯 무의식의 변이와 신체적 변이가 마동에게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그 변화는 마동의 무의식을 강하게 자극하여 숨어있던 또 다른 마동을 노출시켰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마동이 기존의 마동을 억제하고 얼굴을 들려고 하면 머리가 이렇게 조여 오고 숨쉬기 힘든 고통이 들었지만 고통이 사라지고 나면 타인의 생각에 도달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나열하자면 그런 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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