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꼭 봐라
정전이 되었다. 오랜만의 정전이다. 어릴 때는 정전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어머니가 촛불을 집에 늘 두었던 것 같은데 정전은 어느 날 우리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멀어졌다. 하지만 정전이 찾아왔다. 정전이 오면 고요했던 어릴 때와는 달리 뭔가 정전이 되기 전으로 되돌아가려는 시스템 때문인지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자동응답기 전화기도 삐익 삐익거리고 소화전의 소리도 들리고 소음이 짙다. 그러다가 모든 소음도 사라지고 고요를 넘어 적요한 시간이 온다. 와이파이가 되어서 폰으로 유튜브에서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들었다. 정전이 된 깜깜한 밤에 조용히 듣는 장혜진의 목소리는 울고 있다. 그 소리가 그대로 노래가 되었다. 다른 거 다 잊더라도 이거, 이거 하나만 기억해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움과 미련, 그리고 받아들이는 그 담담함을 부른다. 장혜진이 불러 우리의 것이 되어버린 1994년 어느 늦은 밤. https://youtu.be/mKUg4XTknqA
지나가면 딩동 하는 소리가 들리는 전봇대가 있다. 딩동 하며 쓰레기를 이곳에 무단 투기하면 안 된다는 기계음이 들리는 장소가 있다. 나는 이 기계음이 참 듣기 싫은데 꼭 거기로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지나간다. 딱 거기가 햇빛이 가득 고여 있다. 전봇대가 마치 떨어지는 햇빛을 받아서 거기 밑에 고이게 둔 것 같다. 딩동, 기계음이 들리지만 고인 햇살 속에 감금되어 있는 잠깐의 기분이 참 좋다. 차가운 겨울에도 거기, 딱 거기만 오소소 내려앉아 고여있는 햇살을 즐길 수 있다. 오늘도 딩동, 쓰레기 투기 어쩌고 벌금 어쩌고 하는 이 아름다운 목소리는 지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500일의 썸머의 주이 디샤넬이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더 오래전에 나온 크리스마스 영화 ‘엘프’에서 조비로 나올 때가 더 예쁘다. 훨씬 반짝반짝 빛난다. 원래 가수였던 주이 디샤넬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더 예쁘게 들린다. 목소리 하면 조니 미첼이다. 조니 미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꼭 꿈을 꾸는 것 같다. ‘보스 사이드 나우'를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노래를 듣고 있는 지금 여기가 꼭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는 곳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일단 들어가게 되면 나오는 건 무리고 나가기 싫어져 버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빛은 존재한다. 내가 흔히 알고 있는 가시광선의 빛에서 벗어난, 빛이라 불리기에는 애매한 빛이 나의 몸을 따뜻하게 비추는 느낌이다. 조니 미첼의 노래는 목소리가 다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구인이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분명 지니고 있어서 듣고 있으면 예리한 정감이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묘하게 건드린다. 피아노 연주로만 노래를 부르는 ‘리버’는 듣는 내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녀의 ‘헬프 미’를 듣고 자란 리사 오노는 아마도 그때부터 가수가 되리라 결심하지 않았을까. 물론 나 혼자 생각이다. 좀 더 뒤로 가자. 그녀가 아주 전성기 시절로. 타임리프를 돌려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던 그 시대로. 71년도의 ‘올 아이 원트’의 도입 기타 연주가 이미 듣는 이를 부끄럽지 않게 한다. 조니 미첼만의 조니 미첼만으로, 조니 미첼만이 자아낼 수 있는 목소리로 올 아이 원트를 부른다. 이 앨범은 보브 딜런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70년대 초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가 떠오른다. 이해보다는 사랑으로 충만한, 오직 사랑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이.
멀티버스가 판을 치고 에이아이잖아, 가 광고를 하는 요즘 오래되니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다시 한번 봤다. 상류 사회의 부인을 남편 몰래 만나면서 돈을 거머쥐는, 남창?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이야기다. 아주 젊었던 리처드 기어가 나온다. 이 영화는 볼거리, 들을 거리가 아주 많다. 근래의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들 만큼 볼거리, 들을 거리가 가득한 영화다. 신인 시절의 리처드 기어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때마침 영화 의상을 맡고 있던 신입 디자이너였던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리처드 기어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아르마니의 의상을 입은 리처드 기어는 옷을 입었는데도 섹시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이 스크린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집에서 빵만 구워대던 주부들이 모두 일어나 극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장은 양복으로 불리며 고리 터분하고 권위주의적 남성의 의상이었다. 그런데 아르마니의 의상을 입은 리처드 기어가 나타남으로 수트(슈트)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모델이 런 어웨이를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 리처드 기어는 멋져도 너어어어무 멋진 것이다.
그의 움직임, 그의 손짓, 그의 눈빛 그 하나하나가 전부 아르마니의 니트와 바지, 슈트가 물아일체가 된다. 영화 속에는 브랜드가 아주 많이 나온다. 가구나 스피커, 그리고 페리에의 병도 지금과 똑같다. 무엇보다 블론디의 콜미가 ost다. 블론디에는 바로 김아중의 마리아로 알려진 마리아를 부른 데보라 헤리가 있다. 데보라 헤리의 블론디의 노래는 현재 샤넬의 광고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정말 좋다. 그 당시에 이렇게 멋지고 섹시한 여성이 세계를 평정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블론디를 그만두고 만다. 키보드였나, 기타였나 남자 친구의 병간호에 돌입한다. 그게 수십 년이 흐른다. 그리고 몇 해 전에 할머니가 되어 나타났는데 그녀를 기다려준 전 세계의 팬들, 그리고 그 앞에서 당당하게 마리아를 부르는 데보라 헤리.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데보라 헤리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리가 몇 해 전부터 있었는데. https://youtu.be/i4DI71X6PeM
젤리 비
하늘에서 젤리 비가 내린 지 2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비에 젤리가 섞여 내려서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늘 그렇듯 비를 맞았다. 젤리 비가 피부에 떨어지고 나서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피부의 땀구멍으로 들어가 사람의 세포를 공격하고 망가트렸다. 젤리 비를 맞은 사람들은 피부에 수포가 올라왔고 수포는 젤리처럼 변했다. 무엇보다 눈동자의 검은색과 흰색이 젤리처럼 한데 섞여 회백색을 띠었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그저 꿈틀대는 생명체에 불과하게 변했다. 죽지는 않았으되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게 변했다. 정부는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꼭 가지고 다니라 일렀고 아직까지 인간의 젤리 화가 된 사람들의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 병원이나 자택에서 젤리 화가 되어 점점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2년 동안 3만 명이 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곤충은 젤리 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물들 중에서는 젤리화의 징후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털에 젤리 비가 떨어지면 괜찮았지만 피부로 된 배에 떨어지면 떨어진 젤리 비가 피부를 파고 들어가서 젤리 화 시켰다. 동물은 사람들보다 좀 더 덜 심각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개들도 눈이 회백색으로 변했고 주인에게 버려져 길거리나 골목의 어두운 부분에서 죽어갔다. 그 사체가 썩어가며 젤리는 하수구로 내려가서 물고기들이나 생명체들의 젤리화 변이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평일, 평소에도 늘 우산을 가지고 다녔으며 이 공포에서 불안한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다가 정부군의 제재에 대항하다 끌려가기도 했다. 2년 만에 규정 법규가 생겨나고 바뀌기도 했다. 허위사실을 배포하거나 시위를 주동하는 자는 정부군에 의해 사살도 가능했다. 장마를 제외하고 일 년에 가물 때는 몇 달에 오던 비가 젤리 비가 내린 이후 2년이 지난 현재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젤리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면 일단 괜찮았다. 피부에 닿지 않으면 된다. 옷에 떨어져도 괜찮았지만 우산이 제일 안전했다. 그러다 보니 우산은 불티나게 팔렸고 우산 관련주는 어마어마하게 주가가 올랐다. 아이들이 젤리 화가 되는 모습은 처참했다. 비에 섞인 젤리의 성분이 무엇인지 왜 젤리 비가 내리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산을 쓰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2년 동안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공포의 정도가 심각했다. 별거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했지만 예전 같은 분위기는 더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활을 이어가야 했기에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나 학교에 갔고,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2년 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2년 만에 사라진 곳이 목욕탕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이 일어났다. 젤리 비는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뿌려댔다. 식수를 공급하는 호수나 저수지에 젤리 비가 쏟아지면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2년 동안 비를 맞지 않는 가림막을 설치했고 정화시설을 최고조로 올린 곳만의 물을 식수로만 했다. 물을 펑펑 써가며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목욕탕은 사라졌고 식당에서 첫 제공 이외의 물 한 컵 당 얼마를 지불해야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아파트 집집마다 할당된 물의 양은 정해져 있었고 사람들의 몸에서는 체취가 나거나 향수의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무엇보다 옷을 빠는 일이 문제였다. 겨울에는 며칠씩 입어도 괜찮았지만 여름이 문제였다. 당연히 입원실이 있는 대형병원도 빨간불이 들어왔고 젤리 화가 된 사람들은 음압 병동에서 치료를 하며 겨우 목숨을 연맹했지만 살아나는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은 장관들과 의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생활에 더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국민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아 마찰만 일어나고 정부군의 총에서는 연일 총알이 발사되었다. 5개월이 있으면 대통령 선거일이라 나라는 양극화로 나뉜 사람들로 하여금 살얼음판이었다. 방역을 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행위일 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티브이를 틀면 정규방송은 하지 않고 매시간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 사태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집콕족들과 니트족들은 왜 드라마를 보여주지 않느냐, 왜 예능프로그램을 하지 않느냐며 인터넷으로 방송국을 욕했고 대통령을 까돌리는 글을 올렸고 좋아요가 엄청났다.
집 안에 젤리화 된 사람이 있거나 동물이 있으면 신고를 해야 한다. 만약 신고를 하지 않다가 들켜버리면 정부의 제제가 들어온다. 일단 식수를 끊는다. 그리고 벌금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거주지의 방역을 핑계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다. 쓰리 아웃제에 걸리면 그렇게 된다. 한 간의 말로는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이 드물었고 수용소가 과포화 상태라 방치되는 수용자들이 많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피부병이나 발진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죽음으로 간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무시무시했다. 소문이라는 것은 바람을 타고 옆으로 옮겨갈 때마다 더 확장되었다.
바람이 불어 얼굴에 닿으면 사람들은 불쾌해했다. 바람에 습기라도 있을라치면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인류는 그동안 재앙에 가까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여러 번 겪었다며 비가 오면 실내에 있으면 그만이고, 밖에 나갈 일이 있다면 우산과 마스크를 쓰면 된다고 했다.
내가 사는 집은 다운타운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했다. 우주기지와 통신을 위해 거대 안테나를 설치해둔 산이 있다. 20년 전에 쏘아 올린 우주선이 달과 지구 사이의 궤도에 있는데 이 도시의 여기 산이 가장 가까워서 거대 통신 안테나를 설치했다. 현재는 산 밑으로부터 해서 건축물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지만 20년 전에 지어진 집이나 건축물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비교적 도시 중앙에 산이 있지만 거대 안테나 때문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고 공권력이나 정부의 공무원들도 잘 오르지 않는다. 거대 안테나는 그저 신호를 보내고 받는 용도로 점검을 위해 6개월에 한 번 담당자가 헬기를 타고 안테나 주위 헬기장에 내릴 뿐이다. 내가 사는 집은 단독주택으로 작은 정원이 있다. 하지만 손질이 안 해서 벽이 없었다면 그저 숲으로 보일 것이다.
고양이 굴비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햇살이 창으로 내려오면 잠시 해가 닿는 부분에 앉아서 해를 쬔다. 고양이 종류는 모른다. 강변에서 젤리 비를 맞고 덜덜 떨고 있는 걸 상자에 넣어서 데리고 왔다. 젤리 비를 피부에 맞아서 동물병원에는 데리고 가지 않았다. 집에 두고 후에 죽으면 묻어줄 요량이었는데 굴비는 아직 씩씩하게 살아있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 사료도 사지 않았다. 내가 먹는 음식을 조금 떼서 줄 뿐이었다.
개도 한 마리 있다. 역시 젤리 비를 맞았고, 주인에게 버려졌다. 개에게는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고양이는 이름이 막 떠올라 지어지는데 개는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고양이는 물수제비 같은 느긋한 면모가 있어서 이름이 바로바로 떠오르는데 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이 먹지 않는 아이 같아서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개는 젤리 비를 맞아서 아픈 것보다 주인에게 버림받아서 굶주려 아파하는 걸 데리고 왔다. 개도 젤리 비의 징후가 아직 안 보인다.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하거나 피부가 젤리화 되지 않았다. 개는 푸들과 흔히 발바리라 불리는 개의 교배종이다. 나는 개와 굴비 덕분에 말이라는 걸 하고 산다.
젤리 비가 처음 내리던 날 그녀는 나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눈이 회백색으로 변한 그녀가 내가 잠이 들면 문 너머에서 나를 몇 시간이고 본다. 매일 그런 꿈에서 깨어난다. 처음 젤리 비를 맞고 병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실험쥐처럼 이것저것 주사를 맞고 바늘에 찔렸다.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봐야 했다. 살려달라는 말을 하던 그녀가 제발 죽여 달라고 했다.
굴비가 와서 내 얼굴을 핥았다. 개가 내 다리 위에 얼굴을 올리고 잠을 자고 있다.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어나서 굴비와 개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 그게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 대신 내가 죽어야 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매일을 보냈다. 세상의 공포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혼자라는 생각, 고독하고 외로움에 짓눌리는 무게가 너무 힘이 들어 칼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바그너의 음악을 크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젤리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길 바랐다. 야옹, 하는 굴비의 소리가 들렸다. 밥을 챙겨 줘야 한다. 건멸치와 유당이 제거된 우유와 물을 준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단백질 덩어리를 조금 잘라주고 개에도 비슷한 식사와 함께 돼지고기를 삶아서 주고 있다. 개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개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면 그녀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정치인들은 양극화가 되어 젤리 비를 피할 수 있는 도시의 돔 형성화에 열을 올려 선거권을 쟁탈하려고 했다. 젤리 비의 원인보다는 회피하여 당장 표를 얻는 것에 급급했다. 휴대전화 재난 알림이 떴다. 젤리 비를 피해 들어간 한 종교시설에서 교주에 의해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해오다가 젤리 비를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교주의 신묘한 힘을 믿는다며 모두가 젤리 비가 내릴 때 그대로 맞고 처참하게 죽었으니 그 일대에 가지 말라는 뉴스가 떴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종교시설 광장에서 젤리 비를 맞고 그대로 젤리화 되어서 반은 하체가 젤리처럼 녹아서 지하로, 땡으로 흘렀다. 이에 정부는 산에 위치한 종교시설을 점검한다고 했다. 젤리 비가 내린 후에는 땅이 빨리 마르지 않았다.
라는 소설을 쓰며 세계관 형성에 혼자서 신나고 있는데, 옆에서 먼저 쓰던 거 마저 적으라고 한다. 맞다 먼저 쓰던 게 있었다.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젤리 비만큼 스펙터클 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점점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어느 날 엔진오일이 다 됐다는 불이 들어와 점검하러 가니 엔진오일을 간지가 일 년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문자를 받고 와서 케어를 받았는데 그럼 그건?라고 하니 정비소에서 뭔가를 두드리더니 그런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문자 창을 열어보니 정비소에서 문자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분명히 5월까지 문자가 와서 이곳에서 정비를 받았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그러면서 정보가 하나씩 사라져서 식당에 들어가려고 큐알코드를 찍으려고 해도 오류가 떠서 결국 밥을 먹지 못하고, 편의점에도 들어가려 하지만 이제 전부 큐알코드를 찍어야 하는데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팔로워들에게 메시지를 넣어도 답이 없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와서 나의 신용카드(개인적으로 저는 카드가 하나도 없습니다만)가 전부 정지되었으니 사용이 불가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금 상상이나 하고 글이나 신나게 적읍시다. 돈도 들지 않고 재미는 가장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