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31. 2021

의식은 흐르는 대로 흐른다

의식의 흐름

일본을 대표하는 여럿 중에 호쿠사이가 있다. 호쿠사이는 또 드뷔시와도 접점이 있다. 이 이야기로 접어들려면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잠깐 해야지 하며 시작했는데 그만 8개월인가, 9개월인가를 해버렸다. 야간에 일을 했는데 친구 몇이 와서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 덕분에 월급을 못 받는 달도 있었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주인에게 친구들은 밤새도록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주인은 오케이 했다. 피시방은 대학교 앞이라 방학이면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밤새도록 피시방에서 일을 하니 피곤해서 새벽에 골방에서 잠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나에게는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늦게 피아노 공부에 뛰어들어 독일로 유학길에 올랐다. 새벽에 냄새나는 골방에서 어렵게 잠이 들면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으 하는 좀비 소리를 내며 휴대전화를 귀에 올려놓으면, 오늘 피아노를 치다가 손톱이 빠졌다느니, 독일 아줌마는 어쩌니, 레슨을 마치고 접시를 닦는데 힘들다느니, 같은 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였지만 이쪽에서는 몽롱한 새벽에 어렵게 잠이 들다 깨니 어쩔 수 없이 좀비처럼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닌 쾰른 음대는 학비가 없다. 대신 입학은 바늘구멍 통과하기고 졸업은  혹독하다. 넉넉한 친구들은 그저 피아노만 열심히 치면 되지만 그녀어려운 유학생이라 생활비에 집세까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녀는 절박했고 필사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어서 새벽에 잠결에 전화를 받아도  오니 끊으라고  수는 없었다. 나는 잠과 졸음의 경계에서 가물가물했다. 그녀는 베토벤에 심취해있었다. 베토벤을  독파하려고 연습에  연습이었다. 그녀는 베토벤, 베를리오즈, 슈베르트의 피아노 연주는 잘했지만 음악가들의 이야기는 아직  모를 때였다. 나는 그녀에게 음악가들의 생활고? 같은 이야기를 주렁주렁해주었다.


바흐는 말이야 닥치는 대로 음악을 만들어야 했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곡이 있었지만 교회의 음악을 만들어야만 했다고. 성가대도 가르쳐야 했고, 예배 악곡도 작곡해야 했지. 그러다 보니 궁정 예배당의 관현악단의 악장이 되었고 거기에 맞는 음악도 작곡해야 했지. 지가 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바흐의 자식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자그마치 스무 명이나 되었어. 스무 명을 먹여 살리려니까 나 좋아라, 하며 원하는 음악만 작곡해서는 살 수가 없었던 거지. 닥치는 대로 작곡을 해야 그 많은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고. 그러다 보니 그 유명한 칸타타도 만들어냈고 말이야. 그러니 너무 힘들어도 어떻게든 견뎌 봐. 독일에 가기 전에도 이런 말을 해주면 그녀는 밀사의 눈초리로 꽤나 집중해서 듣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단한 일상을 듣기엔 새벽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너 내 말 듣고 있어?


그래, 듣고 있다고. 베토벤이 말이야 한 번은 비가 오고 난 후 일층의 천장으로 물이 계속 떨어져서 일층에 살고 있는 주인이 화가 난 거야.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 보니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에 통증이 오면 통에 떨어진 빗물에 손을 넣어 통증을 식혀가면서 노력을 하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그녀에게 한 번은 드뷔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겨울이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손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싫은 날, 골방에서 잠이 들어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먹으라고 준 조각 케이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프랑스 사조에 대해서는 시큰둥했는데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에 대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는데, 너 호쿠사이라고 알아?라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드뷔시는 몹시 오래전 사람 같지만 1910년대까지 살다 죽었다.


호쿠사이의 그림 중에 파도라는 그림이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호쿠사이의 파도는 각종 굿즈와 게임 캐릭터로도 사용이 된다.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그림을 드뷔시가 보게 되었다. 드뷔시는 살아생전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보고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드뷔시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보고 20분이 넘는 ‘라메르’라는 곡을 만든다.

https://youtu.be/SgSNgzA37To 


라메르를 들어보면 정말 바다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클라이맥스에는 파도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연주가 들린다. 하지만 가장 기묘한 건 클래식으로 연주를 하는데 마치 일. 본.이라는 풍의 기저가 깔린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이게 정말 신기하다. 그런 것을 보면 드뷔시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 드뷔시는 여성 편력이 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난 여자 중에는 결혼해주지 않으면 죽는다며 총을 들고 자살을 하려고 한 여성도 있다. 드뷔시의 곡 중에는 영화 ‘판의 미로’에 나오는 판, 블란서어로 포느가 나오는 봄날의 나른한 곡도 있고, 자신의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장난기 가득한 곡 ‘골리워크의 케잌워크’도 있다.


호쿠사이는 춘화를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파도만큼 유명한 그림이 문어가 여성의 몸에 밀착해있는 그림이다. 문어의 촉수가 여성을 건드리는 이 그림 이후 일본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촉수가 육체를 탐하는 이 형태는 세계로 뻗아 나가기 시작했다.


중국도 춘화가 있고 한국에도 춘화가 있다. 비교해서 보면 특징이 뚜렷해서 재미가 있다. 탐미에 있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우리나라에도 춘화가 성행을 했다. 풍속화를 제대로 그렸던 신윤복의 춘화가 유명하다. 신윤복의 춘화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다. 좀 더 은유적이고 해학적이다. 신윤복의 ‘사시장춘’이라는 그림이 있다. 바로 이 그림이다.

그 사시장춘이 춘화로 분류되고 있다. 누군가는 어딜 봐서 이게 춘화야? 도대체 어디가 야한거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신윤복의 사시장춘은 몹시 은유적이다. 사시장춘은 그림 한 장으로 여러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윤복은 사시장춘을 통해서 봄날의 춘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직설적인 것은 없으나 천천히 그림을 보면 또 직설이게 보이는 은유가 가득하다. 그걸 찾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여러분도 과연 찾아내셨습니까.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던 그녀는 두 딸과 함께 지금은 부산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뜨자마자 먹었던 떡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