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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13. 2020

밥이 먹고 싶었다

시 이고픈 글귀



밥이 먹고 싶었다




오랫동안 텅 비어있는 영혼이 잔인해지기 전에 밥이 먹고 싶었다

피 흐르는 생이 내 일부를 거쳐 전부가 되려고 해서 밥이 먹고 싶었다


그 예전

내가 모르는 저 먼 곳에서 탯줄을 끊고 그대는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밥이 먹고 싶었다


지워지고 없을 그대가 지워지고 없는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밥이 먹고 싶었다


그대를 나의 이 손으로 본다


조심스럽게 손에 들어온 그대의 얼굴

눈썹과 눈썹이 만들어 놓은 그 섬을

코를 따라 내려오는 그 양감의 조각을

해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조금씩 그림이 달라 보이는 그림자의 높이와 

그늘 진 얼굴의 매혹을


물이 비스듬히 누웠을 때

나에게 그대가 내렸다


찰랑거리는 물방울이 따스했고 

아스라이 그대의 붉은 뺨이 가만히 가만히

나에게 와 닿는다


긴 시간 무너진 내 육체가 기다리는 건

그대가 아니라 어쩌면 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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