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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9. 2022

2. 올 댓 재즈

소설


     


 고등학교 사진부였던 나는 늘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녀석들 모두 음악을 했는데 피아노를 전공하던 상후, 누노 배턴코트처럼 기타를 치던 효상,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 문예부 부장이었던 기철.     


 나는 그 녀석들 틈에 잘도 끼여 늘 같이 다녔다. 우리는 다운타운에 자리한 한 건물의 2층에 있는 ‘올 댓 재즈’에 우르르 자주 몰려갔다. 교복을 입은 채 소시지와 맥주를 마셔댔다. 당시에 우리는 물질을 경멸하는 주의와 가난이 낭만을 뛴다는 스토아적인 방식이 가득했다.   

  

 루를 향한 멍청한 릴케를 좋아했고, 자야를 끔찍이 여겼던 백석을 사랑했고, 잔 뒤발을 사랑한 보들레르의 시를 매일 읽었다. 여자를 꼬실 때 프로이트를 소환했으며 지미 핸드릭스와 에릭 클랩튼의 라일라를 효상은 기타로 연주해 버렸다. 하지만 여학생의 관심을 끄는 댄 사진을 잘 찍어주면 되는 거였다. 필름 카메라였기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기까지는 시간의 터울이 있어서 그동안에는 죽 만날 수 있었고 녀석들은 온갖 잡기로 여학생들의 혼을 흔들어 놓았다. 필름 사진은 보정 같은 기술이 없기 때문에 찍을 때 잘 찍어야 했다. 그건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    

 

 ‘올 댓 재즈’에는 우리보다 두 살 많은, 상후와 같이 피아노를 전공했던 올리브 누나가 있었다. 이름이 올리브 일리는 없지만 우리는 올리브 누나라고 불렀다. 뽀빠이의 올리브가 아니라 우디 알렌의 ‘브로드웨이를 쏴라’에 나오는 올리브였다. 제니퍼 틸리가 올리브 역이었는데 그 헤어스타일을 늘 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짓말처럼 우디 알렌의 ‘브로드웨이를 쏴라’를 몹시 좋아했다.     


 올리브는 언제나 교포 화장을 하고 있었고 가슴이 컸다. 그녀는 대학을 휴학하고 올 댓 재즈에서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가 가면 늘 앉는 자리에 안내를 해주었고 손님이 싹 빠져나가면 같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기꺼이 우리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올 댓 재즈에서 우리는 보브 딜런과 존 레넌에 대해서,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를 논했고 엘튼 존이 봉크를 할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올리브가 우리의 테이블에 오면 스필만 연주의 쇼팽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지평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말을 아껴가며 쇼팽을 들었다. 굉장한 울림의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경찰 단속이 뜨는 날이면 올리브는 우리를 주방에 숨겨 주었다. 주방에는 주방만의 설명할 수 없는 냄새가 있었다. 대형 냉장고 옆에 구겨지듯 네 명은 쪼그리고 앉아 서로 보기 싫은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기철이 녀석을 좋아하는 여자애가 여상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여자애와 친구들과 함께 미팅을 했다. 우리는 그녀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여상 축제를 하면 콰르텟을 하는 인기 있는 여학생들이었다. 많은 남자 고등학생들이 만나보고 싶어 하는 인기녀들이었는데 우리와 미팅을 하게 됨으로 많은 남학생들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그녀들은 여상답게 곱게 자라 졸업과 동시에 굴지의 은행에 취업이 예상되어 있었다. 일찍이 자본축적의 방법과 그 효율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알고 있었다. 우리처럼 망나니 같은 부류와는 달랐다. 그녀들은 말을 할 때 단어를 가려가면서 말했다. 요컨대 중량, 질서의 파괴, 인식, 소유, 절망이나 경구 같은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좋아한다는 그녀들을 데리고 우리는 주성치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속에는 라면이 오맹달과 주성치의 입으로 들어가서 코로 나왔다. 웃음 유발 홍콩 발음의 ‘줘 밍 아’를 키득거리며 따라 했다. 하지만 주성치 영화에는 찰리 채플린 같은 기쁜 슬픔이 있다는 것을 그녀들도 알아차렸다. 주성치의 영화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점점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닮았고, 그걸 캐치한 그녀들을 보는 우리의 눈빛도 조금 깊어졌다.     


 어쩐지 그 후에 그녀들은 우리에게 연락을 종종 해왔고 주말마다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했다. 주희와 경애, 글라라는 우리와 어울리는 것울 재미있어 했다. 태백산맥을 좋아하는 주희와 베를리오즈를 좋아하는 경애와 차이콥의 바이올린 연주곡을 좋아하는 혼혈인 글라라.    

 

 토요일 오후에 우리가 그녀들을 데리고 간 곳은 중앙시장 곰장어 골목의 한 곰장어 집 ‘연탄길’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야 학생들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다락방 같은 이층은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이동이 가능했고 저 안쪽에 앉아 있다가 손님이(대부분 고등학생) 차면 각 학교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교복을 입고 와서 곰장어에 소주를 마셔댔다. 그녀들은 처음 술을 마시는 거였다.     


 곰장어 집 벽면에는 낙서가 빼곡했는데 ‘걸레’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많이 띄었고 민정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그녀들은 아버지를 숭배함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학생이 술을 마시는 것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난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 릴케가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와 경박한 어머니의 무지에 의한 이별로 홀로 아버지 손에서 자라났다. 그 때문에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를 일생 어머니로부터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한 결과 비정상적으로 여성에게 정신적 동경을 가지고 방황을 했다. 루에 대한 집착적 사랑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경애가 릴케를 닮았더랬다.     


 부모 중 한쪽이 없는 외로움의 유년기와 처음 마시는 술과 아버지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 등이 기타를 잘 치는 효상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경애는 몇 잔 마시지 않은 소주 때문에 속이 거북했고 화장실을 가지 못해 그 자리에 앉아서 우리가 비운 밥그릇 6개에 나눠서 오바이트를 했다.     


 그 모습에 다른 테이블에서 들리는 야유와 함성.

 곰장어 집을 나올 때 거칠게 욕을 하던 주인 할머니의 외침.   

  

 우리는 찬바람을 맞으며 강변으로 달렸다. 경애가 가장 큰 소리로 웃으며 달렸고 모두가 신나게 달렸다. 우리는 거친 숨을 쉬며 강변으로 달려와 술이 오른 서로를 바라보며 더 웃었다. 거기에서 효상이 기타를 쳤고 기철이가 노래를 불렀다. 강변 저 끝까지 건스 앤 로지스의 ‘페인션스’가 울려 퍼졌다.



Guns N' Roses - Patience https://youtu.be/ErvgV4P6F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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