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Mar 08. 2022

1. 기철이 녀석

소설


    


 기철이 녀석은 문예부 부장으로 노래도 잘 불러서 학교 축제의 무대에도 줄곧 섰다. 내가 기철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학생 놈 주제에 아우렐리우스를 읽고 있었다. 기철이는 한국 소설 중에는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가장 좋아했다. 그 녀석 몇 달을 그 소설만 읽고 또 읽었다.     


 소설 속 영훈이는 주머니에 작은 약병을 넣고 가방에는 아우렐리우스와 하이데거를 지니고 죽음을 향해서 여행을 간다. 비용을 좇아서 소주까지 훔치지만 영훈은 사랑하는 이와 부조리에 헤어지고 더 큰 부조리에 친구들도 잃어버리고 죽음을 택하기로 한다. 소설에서는 아우렐리우스가 죽음에 대해서 설교한 부분이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많은 병을 고친 뒤 스스로 병에 걸려 죽었다. 칼데아의 박사들은 많은 죽음을 예언했지만 이윽고 운명은 그들도 삼켰다. 알렉산더, 폼페이우스, 시저 등은 저와 같이 빈번하게 여러 대도시를 파괴하고, 전쟁에서 몇십만의 기병대를 종횡무진 죽이다가 이윽고 그들 자신도 삶에서 떠났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화성설에 대해서 그처럼 많은 사색을 한 뒤, 물로 배를 채우고 흙으로 전신을 칠한 채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이는 데모크리토스를 물어 죽였고, 또 소크라테스는 다른 이에게 물려 죽었다.]     


 기철이 녀석은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으며 학교 문예지에 죽음에 관한 자작시 7편을 실었다가 터미네이터(학주)에게 끌려가서 허벅지가 3단계 난도질을 당했다. 허벅지라는 신체의 일부분은 신기해서 열 대를 맞으면 퍼렇게 멍이 들고, 열다섯 대가 넘어가면 보남파초노주빨로 멍이 들고, 스무 대가 넘어가면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났다.     


 어째서 죽음에 관한 시를 학교 문예지에 올렸는지, 죽음에 관한 시를 적었는지 이유를 대라는 터미네이터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 해서 맞았다. 그건 뫼르소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질문에 관한 대답은 카뮈라도 알지 못한다. 어째서 그걸 쓴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걸 전가하는가, 시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문학이라는 건 태어나는 순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식의 답을 했다가 허벅지가 난도질을 당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을 해도 터미네이터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허벅지는 난도질당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는 학교에서 가장 악독하고 무시무시했다. 그런 학주였다.     


 우리가 본 기철이의 죽음에 관한 시는 정말 죽음에 관한 시였다. 어떤 미사여구로 죽음을 미화시키는 게 아니라 십 대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 그것이었다.     


 학교는 일 년에 한 번 축제를 했다. 축제는 금, 토, 일 삼일 동안 이어졌다. 기철이는 삼일 내내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불렀다. 기철이는 비틀스를 좋아했고 비틀스의 노래를 잘 불렀지만 축제 때에는 미스터 빅의 ‘데디 브러더 아이 러브 리틀 보이’를 불렀다.     


 교칙에 따라 머리가 짧았던 우리는 ‘미스터 빅’의 보컬인 ‘에릭 마틴’처럼 보이는 가발을 구해서 기철이를 에릭 마틴으로 만들었다. 에릭 마틴은 잘 생기기도 했지만 목소리가 훌륭했다. 어쩐지 한국 가수들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기철이는 폭발력 있게 노래를 불렀다. 폴 길버트만큼 효상이가 기타를 쳤다. 덕분에 해드뱅잉을 하다가 가발이 날아가서 무대 옆에서 감시하던 터미네이터의 얼굴을 때렸다.     


 터미네이터는 가발을 손에 쥐고 꽉 눌렀다. 그는 2년 좀 넘는 시간 내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했고 우리는 터미네이터를 피해서 무엇을 열심히 하느라 늘 긴장해야 했다. 축제 마지막 날 여상 콰르텟과 함께 말미를 장식했고 그녀들과 후에 미팅을 하게 되었고 곰장어 집 사건이 있었다.





미스터 빅, 투 비 위드 유 https://youtu.be/L6-uJLteKe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