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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1. 2022

부추전

추억의 절반은 맛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해서 단칸방에 세 들어 산 적이 있었다. 그때 다행히 주인집을 잘 만나서 우리에게 잘해 주었다. 단칸방에 친척이 오기라도 하면 부모님은 난처했을 텐데 주인집에서 방을 하나 내주어서 멀리서 왔는데 그냥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에 다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그게 사진으로 남아 있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주인집에는 나보다 형이 두 명, 그리고 누나가 있었는데 아주 친하게 지냈다. 특히 막내 형과는 많이 붙어 다녔다. 잠을 자는 시간 빼고는 늘 같이 놀곤 했다. 가난했다지만 어린이라서 그게 불행한 것인지, 흠결인지, 불편한지도 몰랐다. 막내 형과의 기억나는 일은 주인집, 형네 집에서 자두주를 담갔는데 때가 되어서 항아리를 다 따서 자두는 빼고 술만 따로 병에 붓고 있었다. 막내형과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서 자두가 쌓여 있기에 그걸 몇 개 집어 먹고서는 둘 다 요단강을  건널뻔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형편이 좀 나아져 방에 두 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주인집과는 계속 교류를 했다. 더 시간이 지나 큰 형이 대학교를 다닐 때 나는 과외를 받았다. 나의 영어실력에 망연자실한 큰형은 나에게 영어를 꼭 가리켜야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또 태웠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과외비를 받으며 지치지도 않고 매일 와서 그 하기 싫은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과외를 받으며 기억나는 것은 큰형은 꼭 들어와서 양말을 벗었는데 나는 속으로 벗지 마라, 벗지 마라, 했다. 양말을 벗는 순간 기묘한 발 냄새가 콤콤하게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형은 뭐든 잘 먹었다. 가리지 않고 어머니가 주는 대로 다 잘 먹었다. 이토록 튼튼하게 보일 사람이라니, 하고 생각이 들었다. 큰형은 군대를 제대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대기업에 들어갔고 바로 결혼을 했는데 대기업에 입사한 지 일 년 만에 과로로 죽고 말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회사에서 압박감이 굉장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나서 위로를 했다. 어려울 때 돈을 턱 주며 도와줄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한 번 맺은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졌다. 계중은 아니지만 계중처럼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갖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몇십 년 동안 우정 같은 것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던 주인집 아줌마가 할머니가 되었고 어제는 치매가 걸려서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와 주인집 아줌마를 보면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먼 친척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건 어떻게 정의하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관계라는 건 정의할 수 없는 관념일까. 그나저나 인간은 나이가 들면 어째서 치매 같은 것에 굴복하게 되는 걸까.  


주인집과 우리 집은 마당에서 부추전을 그렇게 자주 만들어 먹었다. 부추는 넘치고 밀가루를 버무려 마당에서 지글지글 부추전을 구우면 두 집만의 파티였다. 그 냄새가 골목으로 퍼지면 다닥다닥 붙어있던 옆 집, 뒷 집에서도 와서 같이 부추전을 나누어 먹었다. 혼자인 게 편하고 혼자서 뭘 먹는 것이 좋지만 부추전은 다 같이 둘러앉아 죽죽 찢어 먹었던 맛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부추전을 자주 해 먹는지도 모르겠다.



부추전을 먹으며 듣기 좋을 곡 https://youtu.be/-KBjfnLh2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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