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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8. 2022

비 오는 날 된장국

을 끓여 줬던  외할머니



산 중턱에 해무처럼 안개가 군집을 만들어 걸쳐있었다. 손을 뻗으면 꼭 만져질 것처럼 보이는 그런 구름 같은 안개였다.


비가 많이 오는데 할머니는 개울 건너 밭에 갔다 온다며 나갔다. 비닐로 된 우비가 있는데 답답하다며 우산 하나를 들고 밭으로 갔다. 할머니가 나가고 천둥이 치고 비가 억세게 퍼부었다. 마루에 앉아 비가 쏟아지는 외가의 마당을 보고 있는데 또 천둥이 쳤다.


할머니는 언제 오나. 금방 온다고 했는데.


콰쾅하며 천둥이 주는 두려움에 잠시 귀를 막았다. 비가 퍼붓는데 안개가 낀 저 산은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조금만 내렸다면 지금 개울에 가서 가재를 잡을 수 있을 텐데. 할 수 있는 건 쪼그리고 앉아서 천둥소리에 귀를 막아가며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때 또 천둥이 쳤다. 이번 천둥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쥐고 그 사이에 고개를 숙였다. 쿠쿵하는 소리가 세상을 부숴버릴 것처럼 들렸다. 낮인데도 날이 어둡고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그때 오전 일찍 나갔던 외삼촌과 외숙모가 들어와서 나를 안아 주었다. 외할머니 밭에 갔어요,라고 말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나를 보며 곧 오실 거라며 얼굴에 난 땀을 닦아 주었다. 할머니도 곧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우산을 들고나갔지만 홀딱 젖었다. 비를 맞아서 머리가 얼굴에 다 붙었다.


나는 할머니 하며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는 내 옷 젖는다며 나를 떼어놓고는 우리 똥강아지 밥 묵으야지,라고 하며 주방으로 가서 외숙모와 점심밥을 차렸다. 외할머니는 된장국을 끓으면 꼭 깍두기를 같이 넣어서 끓였다. 깍두기를 전혀 먹지 않는 나를 위해 된장국에 깍두기를 넣어서 젓가락으로 콕 집어서 주었다. 그러면 나는 앞니로 뜨겁게 잘 익은 깍두기를 야금야금 먹었다.


외삼촌과 외숙모와 외할머니와 시골집 마루에 앉아서 비가 쏴아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밥을 먹었다. 한쪽 다리는 마루 밖으로 내서 흔들흔들하며 밥을 먹었다. 나는 으레 신나면 그렇게 했다. 된장국에는 감자도 있어서 외할머니는 내 밥에 감자를 으깨 주었다.


나는 5살인가, 그때쯤에 집안 사정 때문에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1, 2년을 살았다. 여름 장마 기간에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깍두기를 넣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우리는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건 그렇게 밥을 먹고 있으면 행복했다. 할머니는 등에서 땀이 난 나의 옷을 잡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바람이 불영계곡의 자락을 휘잉 지나가고 비가 여러 차례 녹음을 적시고 나면 여름 햇살이 얼굴을 내밀 때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개울에 가서 발을 담그고 외삼촌과 가재를 잡고 놀았다. 매년 여름 레인 시즌이 되면 할머니의 된장국이 생각이 난다.


깍두기와 감자를 넣어서 끓인 된장국. 외할머니도 없고, 외숙모도 없도 시골집 냄새도 나지 않지만 된장국에 깍두기를 넣어서 비를 보며 먹다 보면 미소가 인다.




오늘의 선곡은 장철웅의 서울 이곳은 https://youtu.be/L9bGgUJgw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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