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 일지 모르는 편지
여름 달의 모습입니다. 사진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밤으로의 길목이며 무척 무더운 날입니다. 폭염의 날. 조깅을 하고 오면서 여름 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잠 못 이루는 무더운 밤에 사람들이 괴로워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집집마다 다 에어컨이 있고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잠들면 시원해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근래에 대통령도 잡지 못하는 물가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살기 어려운 날도 없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전 IMF 때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어컨을 마음껏 틀고 싶어도 틀지 못하면서도 더위에 허덕이다 다시 에어컨 리모컨에 손을 올립니다.
저는 그래도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좋습니다.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조깅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말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매일 태어나서 매일 죽는 지루한 삶을 살아가는데 살아있다고 느끼는 기분은 새롭습니다. 겨울에는 여름만큼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춥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겨울이 좋은 이유도 있습니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는데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나의 아저씨의 계절이 온통 차가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운데 따뜻한, 냉정한데 안온한 드라마였습니다. 이지안은 안 착한데 참 착합니다. 착했는데 환경이 그녀를 착하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게 나쁜가 하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 늘 착하다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인사성이 밝네, 동생들에게 양보 잘하네, 청소 잘하네, 같은 말로 저를 착한 울타리 안으로 점점 가둬놨습니다. 그리곤 그 안에서 착한 콤플렉스로 영원히 살아가게 만듭니다. 도대체 착하다는 마법을 어른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부리려 할까요. 저는 지금 착하지 않습니다. 착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너무 다행입니다. 그동안 착한 말 때문에 얼마나 참고 참았는지 아세요? 정작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제때에 취해야 할 태도에 의문이 든 겁니다.
올바른 말이라 생각해서 하고 나면 올바르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빠르게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머뭇거리게 되고 여러 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말로 심사숙고한다지만 그 자리에서 빠른 판단을 요하는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떨어집니다. 오랫동안 생각하는 게 썩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빠른 포기가 나은 방법인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괴로움에서 꼭 벗어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괴롭다는 건 우울한 것의 문학적 오류 같은 것이라 괴로움을 느낄수록 문학적으로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새벽 2시 30분이 넘었습니다.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선풍기 바람이 다리 사이를 휘감고 지나가는 이 기분이 좋습니다. 덥지도 않고 잠들기 직전의 모호하고 몽롱한 상태인 지금 이 순간이 좋습니다. 곧 닥쳐올 괴로움과 불안이 걱정되지만 그때는 또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라디오 레드의 엑시트 뮤직입니다 - 깊은 우울 속으로 한 없이 한 없이 https://youtu.be/OYHRTxOp2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