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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9. 2022

이 뜬 하늘


주차장에 차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평소에 비해 아주 커졌다. 조깅을 하고 반환점을 돌 때 얼굴에 닿는 바람이 후덥지근하지 않았다. 조깅하며 엄청나게 흘린 땀이 빨리 식는다. 그리고 매일 저녁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있다. 여름이 지나간다는 불안한 느낌이 와닿는 순간이다.


아직 빽빽하게 들어차지는 않았지만 일주일 동안 많이 비어 있던 주차장에 차들이 쏙쏙 들어찼다. 휴가가 대부분 끝나간다는 이야기다. 8월 15일이 되면 여름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유월부터 시작된 나만의 여름을 8월 15일까지는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며 지내는 것이 나의 여름 나기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이 더워서 싫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시원한 개울이 있는 외가에서 보내다가 8월 중순에 집으로 오면 여름이 거의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어린이니까 어른으로써 따라오는 고민이나 불안이 없었기에 여름이 덥. 다.라고만 느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여름에 들어가는 냉방비, 자동차나 집세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은 늘 더웠고 열대야가 오면 밤잠을 설쳤음에도 매년 여름이 되면 올해가 가장 덥다, 백 년 만에 오는 더워, 같은 말들이 나온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여름은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되었다. 겨울의 추위는 견디지를 못하겠는데 여름의 더워, 특히 요즘과 같은 폭염은 이상하지만 잘 견딘다. 덥긴 덥지만 썩 덥지 않다. 올해는 작년이나 그 이전에 비해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고 있다. 아직 자면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잠든 적이 없고, 요즘은 하루 24시간 중에 에어컨을 틀어 놓는 시간이 2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출퇴근할 때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운전을 한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막 덥지가 않다. 매년 하는 말이지만 여름이 되면 집 앞 바닷가에서 피부를 적당하게 태운다. 나무색으로 변한 피부는 어지간한 태양빛에는 그렇게 뜨겁지 않은 이유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폭염 속에서도 매일 조깅을 해서 그럴 거라 생각을 한다. 폭염 속에서 조깅을 하면 체온이 주위보다 올라가서 덥덥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져 에어컨 바람이 나에게는 너무 차갑다. 거짓말 좀 보태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바람이 에어컨 바람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일하는 곳에도 에어컨이 없다. 로비에 건물 중앙식 냉방이 돌아가서 문을 열어 놓고 셔큘레이터를 틀어 놓으면 괜찮다.



조깅을 하다가 며칠 동안 하늘에 뜬 달을 봤다. 달은 언제나 저기 저 하늘에 외롭지만 쿨하게 떠 있다. 떨어지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저 멀리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지도 않은 채 저기에 뜬 채 내가 바라보면 고독하게 나를 바라봐준다. 달은 늘 같은 모습일 테다. 400년 전의 달도 지금의 달이었다. 300년 전의 사람도 지금 내가 보는 달을 고개를 꺾어 바라보았다. 윤동주도 감옥에서 조그맣게 난 창으로 보이는 달을 보며 ‘달을 쏘다’를 썼다. 그 달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란 몹시도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기분이다. 달은 그렇게 오래 전의 사람들과 나를 이어준다. 달은 항상 똑같은데 매일 다르게 보인다. 그건 달과 나 사이에 있는 불순물 때문이다.


가스층이 없는 맑은 날은 진하게 보이더니 습도가 높고 대기에 먼지가 많으면 달은 뿌옇게 보인다. 구름이 하늘에 많은 날은 달이 가려지기도 하고, 아주 흐리게 보인다. 저렇게 쿨하게 떠 있으려면 달은 꽤나 힘들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일큐팔사에도 나온다.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고 든 생각을 한다. 어느 날 1984년에서 1q84년으로 와 버린 아오마메가 매일 달을 쳐다본다. 요즘 일큐팔사를 다시 읽고 있지만 참 재미있다. 읽을 맛이 난다. 그 분위기, 주위의 건물이나 사건들이 상상력으로 떠오른다. 노부인이 살고 있는 주택의 모습도, 심지어 아오마메의 얼굴도 떠오른다.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진다.


어제는 조깅을 하면서 보니 새 한 마리가 달을 지나 날아가고 있기에 멈춰서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고 하기도 하고, 사진을 담았다고 하기도 한다. 나의 여사친과 결혼한 영국인 죠는 한국말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한 번은 똥을 쌌다고 말을 하기에, 그 말은 더러우니 똥을 눴다고 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 도대체 한국말은 왜 이리 어렵나면서, 대변을 본다는 말은 뭐냐고 했다.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랬더니 아니 왜 지가 싼 똥을 왜 보는데?라고 했다. 자신의 아이들은 한국말, 영국 말 반반씩 하는데 주로 영국에서 생활을 하니 한국말을 하는 건 지 엄마밖에 없어서 한국말이 아무래도 서툴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국말로 응가하고 왔다고 한다. 죠는 맙소사다, 도대체 응가, 똥, 대변, 본다, 싼다, 눈다, 맙소사.


달은 밝게 빛나고 있다. 저 먼 하늘에 떠서 빛난다. 고로 달은 밝다. 만약 그런 달이 정말 두 개가 떠 있다면 태양계는 더 밝았을까. 과학적으로 변하는 지구의 현상을 소거하고 달이 두 개가 뜬다면 정말 좀 더 밝아 보일까. 달이 50개가 있다면 엄청 밝을까. 역시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태블릿 기기를 광고하는 영상을 보면 500 니트, 300 니트 같은 화면 밝기입니다.라고 한다. 이게 촛불의 개수를 말한다고 한다. 500 니트라면 촛불 500개를 밝힌 것만큼 밝아서 낮에 야외에서도 시인성이 좋다고 한다. 그만큼 밝아서 화면이 잘 보인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이런 영상을 보면 500 니트니까 밝군,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촛불 500개를 밝혀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얼마나 밝은 건지 잘 모른다. 촛불 500개를 밝힌 것이 주위를 얼마나 밝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태블릿을 광고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촛불을 500개 밝힌 것이 얼마나 밝은 건지 해보고 그렇게 말해주면 더 좋을 텐데. 왜냐하면 지금은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구독자수와 상관없이 테크 튜브들이 우르르 같은 기기를 같은 방법으로 같은 말로 광고를 하고 정보를 알려 줄 뿐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촛불을 아주 많이 켜 놓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마데우스다. 음악을 할 때 순수가 되어 버리는 아마데우스. 완전한 본연의 모습이 된다. 증폭된 재능과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몸과 마음을 덮어 버려 음악을 할 때에는 마치 신과 악마의 모습이 동시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재능을 평탄하게 놔두지 않았다. 고립과 쾌락을 오고 가는 극단적인 삶을 사는 아마데우스. 아내도, 황제도, 음악을 하던 음악가들도 아마데우스의 재능을 실용하지 못하고 남용한 결과 살리에르의 집요함이 동정으로 변모할 때 아마데우스는 결국 술과 약에 영혼을 팔아 버리고 만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와 꺼져 버릴까 두려워서 그의 곁에서 한없이 꺼지고 불붙기를 반복하는 무섭고 안타까운 살리에르의 예술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촛불이 아주 많이 나온다. 전기가 없으니까. 밤을 밝힐 수 있는 빛은 오직 촛불밖에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의 극장에서도, 집안에서도 초로 불 밝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데우스는 안타깝다. 귀족의 녹을 먹으며 생활해야 하니 일어나기 싫은 시간이 일어나서 쓰기 싫은 가발을 쓰고 먹기 싫은 아침을 격식을 차려 먹어야 했고, 머리가 나쁘고 음악에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귀족의 아이들에게 오전 시간은 음악을 가르쳐야 했다.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음악만 하며 살았으면 좋았을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가 일찍 죽음으로 간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매일 밤마다 집안 가득 불 밝혔던 촛불 때문이지 않았을까. 초를 태우며 나오는 그 연기가 몸에 안 좋은데 어마어마한 저택의 어두운 방안을 매일 밤 밝히려면 엄청난 초를 태웠을 것이다. 술과 약에 잠식되어 몸도 좋지 않은 아마데우스는 초를 태우며 나오는 많은 여기가 더 일찍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을까.


모차르트가 음악을 만들며 밤에 나와서 쳐다봤던 그 달이 우리가 오늘 밤에 보는 달이다.


그런 의미로 아마데우스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https://youtu.be/DXeBFhqViYg



땀으로 다리가 전부 젖었는데 사진으로 표현이 안 되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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