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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26. 2022

12. 얼굴이 터진 진만이

소설

    


 진만이가 얼굴의 반이 괴물이 되어 득재의 방구석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득재는 하숙을 하면서 저녁만 하숙집에서 먹고 아침과 잠심은 학교 앞 강원 분식에서 한 달 치를 지불하고 밥을 먹었다.


 득재는 도시락을 싸오는 우리와 달리 점심시간에 강원 분식에서 밥을 먹는데 그날은 오므라이스가 나왔다. 그런데 옆 학교 애들이 통로를 지나가면서 득재의 오므라이스 접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대로 지나갔고 득재는 옆 학교 애들에게 대들었다가 분식집 밖에서 엄청 맞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진만이가 옆 학교를 찾아가서 그 아이들을 불러내서 몽땅 병신으로 만들었다.


 그 와중에 옆 학교 짱이 왔고 좋게 말로 해결하자고 했는데 진만이는 들을 가치도 없다며 득재에게 사과하지 않는 아이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서 한 사람을 때리는 건 정말 비겁한 짓이라면서 말이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치는 진만이는 양궁부에서도 가장 힘이 셌고 무서웠다. 승모 근이 무시무시하게 나왔고 팔뚝이 김장 담글 때에 나 볼 수 있는 크게 실한 배추 같았다.


 옆 학교 일진도 진만이를 두려워했는데 그들은 쪽수가 많았다. 그들은 축구부로 한꺼번에 진만이에게 대들었고 진만이는 득재에게 사과를 하지 않은 아이들만 악착같이 두들겨 팼다.


 득재 방에서 진만이를 봤을 때 얼굴 반쪽이 가면을 씌워 놓은 것 같았다. 담배를 빨아 당겨 연기를 뱉으면 부은 입술 탓에 한쪽으로만 연기가 나왔다. 우리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진만이에게 연기를 더 많이 뱉어달라고 했다.


 진만이는 싸움을 할 줄 알았다.

 

 “눈을 봐야 한다. 한 명과 싸울 때는 눈빛에서 밀리면 끝이다. 비록 내가 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빛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여러 명과 싸울 때는 팔, 다리를 보면 돼.”


 진만이는 얼굴이 터진 채 그런 말을 했다.


 “너 그러다가 앞으로 뭐가 될래?”

 진만이는 어른들이 하는 이 말을 가장 싫어했다.


“행복을 저축으로 생각하는 병신들이 있어. 내일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오늘 개고생을 한다? 그건 정말 병신들이나 하는 짓이야. 계획이라고 백날 짜 봐라 계획대로 되는 게 있는지. 그저 오늘을 좃나게 사는 거야. 오늘 좃나게 싸우고 나면 내일이 되지. 그러면 또 좃나게 오늘을 보내는 거야. 좋은 것은 늘 강요당하지. 하지만 공유하려고 하지 않아. 그런 어른들 대부분이 가족에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며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별로 말이 없던 진만이는 캡틴 큐 한 병을 마시고 그렇게 말을 했다. 진만이는 양궁대회에서 많은 수상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 시기에 양궁부가 해체가 되면서 인생과 바꾼 3년 동안 하계, 동계 훈련과 그 훈련을 같이 보낸 양궁과 화살, 아대 등 장비를 몽땅 삼십만 원에 팔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돈은 하룻밤 술값으로 충당했다. 덕분에 우리는 중식당의 요리를 맛보았다.


 득재는 옆 학교 아이들에게 두드려 맞고, 진만이는 싸움에서 두드려 맞았고 기철이는 늘 그렇듯 터미네이터에게 두드려 맞고, 나는 사진부 선배들에게 맞아서, 효상이는 인문계에서 기타만 친다고 아버지에게 맞고, 이래저래 우리는 상처를 가득 짊어지고 득재 방으로 모여들었다.


 이런저런 상처가 가득한 아이들끼리 득재 방에 쓰레기봉투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상후가 페리카나 양념치킨을 사들고 왔다. 한 마리로 물론 모자라지만 양념에 밥을 잔뜩 넣고 비벼 먹으면 괜찮았다. 아이들은 가진 것을 가지고 만족할 줄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리고 캡틴 큐를 홀짝였다. 물론 진만이 때문에 캡틴 큐를 한 병 더 사 와야 했지만.


 득재 방에 있는 유물 같은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리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지직,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가 흘렀다. 우리는 음악에 빠져들었다. 루 리드는 아직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었다. 루 리드가 죽고 없어지더라도 음악은 남아서 지금처럼 상처로 가득 찬 우리를 토닥거려줄 것이다. 오늘은 그야말로 퍼펙 데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Lou Reed - Perfect Day https://youtu.be/QYEC4TZsy-Y

영상출처: TaCle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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