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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29. 2022

13. 시인의 카페

소설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가기 며칠 전, 기철이가 나에게 와서 용돈을 그동안 모았으니 이틀 동안 서울에 갈 텐데 같이 갈 테냐,라고 묻기에 손가락으로 오케이 마크를 만들어서 들어 보였다. 서울에 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있거나 좀 더 흥미로운 일이 있기에 가는 것이었다.


 기철이는 나에게 “네 녀석이 사진을 좀 찍어줘야겠어”라고 말했고 나는 올림푸스 팬을 들고 기철이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가기 위해 밤새도록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들고 간 카세트테이프를 나눠 들었다. 창밖은 변하지 않은 어둠을 지니고 있었고 시간은 더디고 더디게 흘렀다. 이어폰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하이 홉스가 나왔다.


 새벽 4시에 청량리 역에 도착을 했다. 예전 맘모스 백화점이 보였고 우리는 2층이 다방이고 1층이 식당인 곳에 쓱 들어가 육개장을 한 그릇씩 먹었다. 육개장은 벌겋게 보였는데 썩 매운맛은 없었고 후추 맛이 많이 나는, 하지만 뜨거워서 후후 불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인사동에 있는 ‘귀천’이라는 카페에 갈 거야.”


 입안에 육개장을 밀어 넣고 기철이가 말했다.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하는 카페였다. 동백림 사건에 말려든 천상병 시인은 중앙정보부에게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그야말로 심각했고 천상병 시인의 몸을 손상시켰고 마음의 상태를 어린아이로 돌려놓고 말았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짓이었다. 한 사람의 세계를 그대로 멸망시켰다. 천상병 시인은 몸이 망가져 볼펜을 잡을 수 없었고 자녀도 가질 수 없었다.


 천상병 시인은 가난했지만 기행을 일삼고 호탕했으며 음주를 좋아해서 여러 문인들과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도 끄떡없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천상병 시인은 움직여지지 않는 손이지만 시 ‘귀천’을 완성하고 싶었다.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고문을 당한 곳에서 천상병 시인은 어떤 무엇을 보게 되었다.


 고문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빵을 주던 경찰이 있었고, 버려져 행려병자처럼 보였지만 이불을 덮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천상병 시인은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육개장을 먹는데 기철이가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목으로 넘어가지 않게 말이다.


 ‘귀천’이라는 카페는 작고 아담했다. 기철이는 나에게 셔터를 누르기를 바랐다. 앉아서 이름도 모르는 차를 마시며 안을 죽 둘러보았다. 분명 문인 같은데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기철이는 완벽에 가까운 시인, 천상병에 대해서 이런 저린 이야기를 계속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왜 그런지 시야가 자꾸 부옇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 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보니 못생기고 형색이 초라한 사람이 웃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나에게 말했다.


 문학을 하고 싶으냐.


 네, 하고 싶습니다.


 넌 이미 세상에 나온 후부터 문학이 된 것이다. 문학을 하는 건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다. 너 자체가 문학이란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거라.    

 

 고통 속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을 본 천상병 시인의 시의 세계를 나는 기철이 덕분에 몸으로 느끼고 올 수 있었다.     


 아름다운 계절이 곧 온다.


 눈물은 이유 없이 자꾸 흘렀다.     


 그리고, 그리고.



Pink Floyd - High Hopes https://youtu.be/7jMlFXouPk8

영상출처: Pink F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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