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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2. 2022

14. 득재의 방에서 유재하 노래와

소설


 우리는 모두 득재의 방, 벽에 기대어 유재하의 노래를 들었다. 모두 말이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고요한 방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기철이 녀석, 엎드려서 무엇인가 적고 있었는데 보니까 유재하에 대한 짤막한 소설을 적고 있었다.


 기철이 녀석은 그 소설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이 소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주인공인 내(우리)가 또래의 유재하를 만나는 이야기였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소설]


 “난 말이야, 나의 앨범에 클래식을 한 번 접목해 볼까 해. 내가 심취해 있었던 모차르트나 베토벤, 그들의 음악을 곡에 어레인지 해 볼 거야”라고 유재하가 말했다.     


 맙소사.     


 아주 앳된 유재하가 내 앞에서 악보를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용필이 형의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말이야 내 첫 앨범을 그녀에게 바칠 거야”라며 유재하가 웃었다. 바보스럽게 웃는 그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순수했다.     


 “문제는 어레인지야. 내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워봐서 아는데 그런 클래식 음을 가요에 같이 접목시킨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고 질리지 않는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그녀의 클라리넷 연주도 같이 집어넣을까 해. 먼저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로 음을 잘 살린 후 클라리넷, 플롯, 오보에의 관악기로 디테일을 살릴 거야. 내가 조금씩은 연주를 할 줄 아니까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거야, 어때?”라고 유재하는 볼펜을 손에 든 채 말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 ‘우울한 편지’가 머릿속에서 지나쳐갔다. 우울한 편지 중 ‘나를 바라볼 듯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라는 부분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섞어가며 진행되는 메이저와 마이너 코드의 변주로 인해 어려울 수 있으나 유재하는 천재적인 작곡 실력과 편곡으로 코드 진행이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놨다.     


 “여기 이 부분을 봐. 이건 ‘지난날’이라는 곡인데 여기 이 부분, 이 뒷부분 말이야 ‘생각 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여기에 변조를 줄 건데, 장조에서 단조로, 단조에서 장조로 계속 변화해서는 안 되는 변조를 사용할 건데 어떨 것 같아? 듣는 이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까? 대중가요는 아직 이런 변조 방식의 가요가 없는데 말이야.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어”라며 유재하는 근심 섞인 말을 했다.


  그는 내 앞에서 지난날의 뒷부분을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어. 그런 감성을 가사에 담고 싶었어. 꽤 오랜 시간을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들을 보지 못하면서 지내왔잖아. 억압이라든가 폭력의 미학 속에서 힘이 없고 작은 사람들은 핍박을 받아왔어.” 그는 부드러우면서 단호했다.     


 “이 노래는 제목이 ‘가리워진 길’이라는 노랜데, 여기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이 부분 말이야, 이건 우리들의 잡히지 않는 꿈을 나타내는 부분이거든, 우리들은 항상 무지개를 쫓고 있잖아. 하지만 무지개라는 것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다가가 서면 저만치 또 달아나 버리고.”     


 유재하는 악보를 콕콕 두드렸다.     


 “문제는 나의 목소리야. 나는 용필이 형처럼 감성이 풍부하지 않고 현식이 형처럼 힘이 있지 않아서 그게 제일 난관이야.”     


 나는 유재하에게, 너의 목소리는 담백하고 덤덤한 맛이 깊어서 듣는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후배 가수들이 너의 노래를 끊임없이 부르고 존경하게 될 거라는 나의 말에 그는 수줍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그의 노래가 유재하와 내가 마주하고 앉아있는 이 공간에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25살의 유재하가 악보에 무엇인가를 적어가며 앉아서 세상에 나올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 앨범이 나오지?라고 내가 물었다.     


 “곧, 아마 이번 여름에 앨범이 나올 거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녀에게 이 앨범을 꼭 바칠 거야. 가진 게 없기 때문에 결혼 선물로 그녀에게 바치는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 순수한 강아지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해 7월 괌에서 발달한 태풍 셀마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기상청의 잘못된 진로 판단과 오보로 재해가 엄청났다. 셀마는 소멸했으나 집중호우가 가져온 피해는 굉장했다. 농경지가 침수됐고 주민들이 3주 이상 외부에서 지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어수선한 여름의 분위기를 뒤로한 채 유재하는 그 해 8월 그의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다. 같은 해 11월 1일 새벽, 플롯을 전공하던 애인을 남겨둔 채 강변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그는 사망한다.     


 그때 유재하의 나이는 25살.     


 유재하의 노래 중 ‘내 마음속의 비친 내 모습’의 가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라는 부분은 마치 유재하 자신이 요절하는 것을 미리 예측이라도 하는 듯하다.     


 62년 서울 출생.

 한양대 작곡과 81학번.

 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

 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

 87년 8월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발표.

 87년 11월 사망.     


 그의 짧은 이력에 비해 음악세계는 무척 깊고 풍부했다. 신승훈은 유재하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사랑하기 때문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열악했던 대중가요에 풍성한 클래식 반주를 도입하고 기존 대중음악의 벽을 뛰어넘은 유재하의 노래는 80년대 말 암울했던 대학가와 젊은이들에게 이슬비와 같은 촉촉한 정서를 심어 주었다 – MBC 음악 다큐 참조     


 그의 덤덤함은 많은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유재하를 잃었지만 그는 노래를 우리 곁에 남겨놓았다.


 언젠가부터 유재하는 대중음악의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가끔은 요절이라는 게 낭만적인 색채를 띄기를 하고 조금은 과대평가되기도 하지만 유재하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뮤지션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의 존재는 더욱 커다랗게 느껴질 뿐이다.     

[소설 끝]     


 우리는 이렇게 쓴 소설을 교지에 실었고, 유재하를 좋아했던 아이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았다. 교지는 각 학교로 퍼졌고, 덕분에 학공여고의 문예부 부장이었던 개구리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직접 우리 학교로 우리를 찾아왔다.



가리워진 길 https://youtu.be/3uHDbEBE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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