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14. 2022

15. 연탄을 배달하던 날

소설

   

   


 그날은 욕이 나올 정도로 추운 새벽이었다. 도대체 외국 명절 같은 날에 우리나라까지 들떠서 휩쓸리는 꼴이라니. 대단히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흥분에 휩싸여 너도나도 케이크 같은 것을 사들고 분주하게 다녔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전구 같았다.  


 “뭐 어때, 모두가 조금은 행복하면 좋은 거지.”

 개구리가 말했다.     


 “크리스마스는 여러 말이 합쳐진 말이야. 크리스트, 그리스도, 천주교인가 거기의 마스, 이런 단어들이 한데 뭉쳐서 크리스마스가 됐지.”

 기철이가 말했다.     


 도대체 기철이 저 녀석은 어디서 주워듣고 오는 걸까.     


 “동북아시아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가 쉬는 날일 거야. 중국이나 북한은 공휴일이 아니거든.” 기철이의 말에 상후가 “일본은?”라고 물었다. “일본도 공휴일이 아니야.”     


 “뭐? 정말이야?” 우리는 놀랐다. 기철이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나라가 공휴일로 지정이 된 건 천주교보다 늦게 들어온 1800년대의 개신교 때문이었는데 해방 후에 미군들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쉬는 것을 보고 우리도 따라 하기 시작했지.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의 영향도 있었고, 1949년부터 우리나라는 공휴일이었어.”     


 올 댓 재즈에서 머리이어 캐리의 캐럴을 들으며 기철이가 말해줬다.     


 

 새벽의 그곳은 리어카도 올라가지 못해서 연탄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다. 골목을 돌아 돌아서 가면 또 골목이 나오고 그 골목에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산 밑의 집이 나타났고 대문을 열면 또 어딘가로 이어지는 골목이 나왔고 그 골목 안의 한 집에 연탄을 배달해야 했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연기처럼 나왔다.    

 

연탄 배달을 하는 기철이 아버지는 매일 자신의 월급에서 연탄 몇 장을 비축해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산동네에 있는 독거노인들의 집에 연탄을 선물로 줬는데, 기철이 아버지가 며칠 전에 빙판길에 발목을 접질려서 그 일을 우리가 대신하게 되었다.


 호기롭게 우리가 한다고 했지만 칼바람이 부는 새벽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배달을 하는데 어쩐지 덩치가 큰 상후가 나보다 연탄을 덜 짊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장갑을 낀 채 연탄을 만지고 날랐지만 얼굴과 내복을 입은 다리에도 연탄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얼굴을 닦으면 더 시커멓게 되었다. 기철이가 제일 많이 짊어지고 말도 없이 그 먼 길을 연탄을 날랐고 개구리는 산동네 밑에서 리어카에 걸터앉아 연탄을 지켰다.     


 우리가 배달해야 하는 집은 총 세 집이었다. 산타처럼 새벽에 이 모든 일을 해치워야 했다. 처음에는 춥고 연탄이 생각보다 무거워 아무런 말도 없이 연탄을 날랐지만 40분쯤 지나니 등이 후끈거렸고 어두웠던 하늘에서 여명이 나타나는 것과 반대로 서로의 얼굴이 연탄의 검은색으로 물들면서 우리는 어느새 키득거렸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배달을 해야 했다. 연탄을 깨트려서는 안 된다. 연탄 한 장은 추위에 떠는 독거노인의 하룻밤을 책임져야 하는 소중한 것이었다. 연탄을 전부 배달하고 나니 오전 8시가 넘었다. 기철이 아버지를 후원해주는 작은 교회의 목사님이 우리를 불러 교회의 지하 식당에서 새벽송을 돌고 오는 아이들과 함께 소고깃국에 밥을 말아 주었다. 교회에는 넷 킹 콜의 캐럴이 흘렀다. 밖에서 들을 때보다 따뜻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새카맣고 고된 얼굴로 나란히 앉아 트리처럼 보이는 붉은 소고기 국에 밥을 말아 묵묵히 먹었다. 기철이는 그때 말이 없었다.     


기철이는 우리보다 조금 일찍 어른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기철이 아버지는 여러 곳을 이사를 다녔고, 연탄배달을 했다. 이사를 가기 전 늘 모르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기철이의 엄마를 우리는 본 적이 없다. 기철이가 교지에 가족에 대해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가족은 짐이라고 썼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아버지뿐인데 말이다.     


기철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아직 집을 나가지 않았을 때 엄마는 기철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주었다. 기철이 아버지는 연탄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손톱 밑에 낀 연탄재를 솔로 씻느라 배달이 된 짜장면이 자꾸 불어 터지려고 했다. 아버지는 먼저 먹으라고 했지만 엄마가 아버지가 씻고 오시면 같이 먹자고 했다.


 그렇게 짜장면을 앞에 두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짜장면은 불어 터지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서 젓가락을 드는데 손톱 밑의 검은 때는 없어지지 않고 붉은 피가 자꾸 그 사이로 흘렀다. 고집이 센 놈이라 그런지 기철이는 그 뒤로 짜장면을 먹지 않았다.     


 교회의 지하 식당에서 국밥을 말아먹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철이의 옆구리를 쳤다. 주머니에 있던 귤을 하나 건넸다. 그 귤은 배달을 마지막으로 끝낸 집의 할머니가 나와서 주머니에 넣어준 귤이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기철이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그때서야 기철이도 나를 툭 쳤다.     


교지의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족은 짐이지만 그 짐이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그 짐 덕분에 나는 평평한 땅에서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었다-



넷킹 콜, 크리스마스 송 https://youtu.be/0VZGDrfIIpg

팝뮤즈


매거진의 이전글 14. 득재의 방에서 유재하 노래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