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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

1장 당일



4.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을까.


 마동은 일렬의 무리를 돌아 다시 달려서 뛰어나갔다. 지금은 레인 시즌, 장마가 한창이다. 밤공기는 다른 날보다 더욱 무겁고 꿉꿉하고 후텁지근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등과 어깨에 땀이 배어 나오고 땀의 맛은 정말 짤 것이다. 짠 내가 풍기지 않는 것이 다행 일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달리면서 나오는 땀은 그렇게 생각처럼 짜지 않다. 여름날은 겨울의 밤보다 밝아서 시야각이 좋다. 하늘도 환하게 보이고 구름의 유영도 눈에 들어왔다. 구름은 남동풍을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굼뜨게 가는 듯 느껴졌다.


 남동풍?


 바람이 불었다. 여름밤에 부는 바람임에도 이질적인 바람이었다. 이전의 여름에는 도저히 맡아본 적 없는 바람의 냄새와 기운이었다. 앞서 일렬로 걸어가는 아주머니 일행 때문에 잠시 속도를 줄이는 김에 멈춰 서서 바람을 느꼈다. 확실히 처음 느껴보는 바람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어김없이 여름 속으로 가을의 바람이 차고 드는데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이질적인 바람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일렬로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을 제외하고 장마기간의 조깅코스에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이질적인 바람은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바람이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람이라는 것은 소리만 기생한다. 형태도, 형체도 없다. 눈으로 볼 수도 없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저 얼굴을 약간 들어 바람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바람은 너무나 미미한 존재 같지만 존재감은 완전무결하여 독자성과 자체성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바람이 힘을 모아 강해지면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 바람을 잘 이용하면 풍력발전을 할 수 있지만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바람은 미미하기만 했다. 바람이란 불어와야 비로소 바람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자동차가 만들어낸 바람은 진정한 바람이 아니다. 그건 단지 자동차 주위를 맴도는 난기류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바람은 알 수 없는 곳, 마동이 상상하는 그 세계의 끝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잠에서 막 깨어난 요정들이 우르르 몰려오듯 불어와야 진정한 바람이다. 마동은 조깅코스에 서서 고개를 조금 들고 이질적인 바람을 느껴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이질적인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까.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무형의 앙금을 흩날리게 했다. 그리하여 마동은 앙금이 마음속에서 춤을 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앙금은 무엇의 앙금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막혀버리는 것이 마동이 요즘 느끼는 패턴이었다.


 앙금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해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앙금은 진흙바닥처럼 쌓여있었다. 앙금 속에는 마동이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어떤 누군가의 앙금도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동의 마음속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무엇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기분 나쁠 만도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한 기분이었다. 소피아 로렌의 머리숱처럼 강한 것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서 마동이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두 손으로 떨 수 있을 만큼 가득 쌓여있었다. 손으로 떠 올리면 흘러내리는 앙금 속에 분명 누군가의, 마동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도 섞여 있었다.


 바람은 지속적이다. 계속 앙금을 흩날렸다. 게다가 바람은 그동안 마동이 맡아보지 못한 냄새를 몰고 왔다.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바람이 아니다 이건. 그러고 보면 마동은 자신이 꽤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마동은 매일 이 도시의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조깅코스를 달렸다. 그러나 이런 알싸함이 깃든 바람은 처음이었다. 기시감이 들기도 했고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봄날의 아지랑이 냄새와도 달랐고 가을의 스산함과도 다른 바람이었다. 순간 마동의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이 생각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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