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린의 손길 4

소설

by 교관


4.


은행원인 최지은 씨는 은행에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입으로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전부 드러나는 스타일이었다. 최지은 씨는 집에서 보호를 받으며 애지중지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여고를 졸업해 좋은 대학교를 졸업해서 바로 은행으로 취업했다. 막힘도 없고 사랑하는 남자와 사귀다가 헤어져도 그렇게 슬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해외에 나가서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것이 좋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이 즐기고 싶은 걸 즐겼다. 마마보이처럼 부모님에게 전폭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을 했다. 집을 떠나 자취할 생각도 없었고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은행에 취업이 되어서 좋은 남자와 함께 결혼을 하여 잘 살면 되었다.


은행에 취업을 바로 했다고는 하지만 착실하게 준비를 했다. ‘착실하게’ 속에는 엄마의 손길을 많이 탔다는 것이 엿보였다. 큰 눈동자와 수술한 쌍꺼풀이 잘 어울렸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닌 아가씨였다. 그러나 가만히 표정이 없을 때에는 아주 어두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은행 일이 무척이나 힘든 것이다. 뛰쳐나오고 싶을지도 모른다. 은행 창구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직장을 잡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여러모로 당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은행에 취업을 해서 한 곳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서 일을 하고 또 거기서 몇 개월이나 1년 있다가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 적응이 최지은 씨는 쉽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창구에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보이는 사람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최지은 씨는 그대로 쓰러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곧,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은행의 일이 전부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바뀌는 날이 올 테니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가 되면 창구에 있는 사람들은 퇴직을 강요받거나 다른 부처로 가서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창구에서 지금처럼 일일이 통장이나 카드를 주고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니 최지은 씨는 심장이 뛰었다.


최지은 씨는 모임에서도 막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잔심부름 같은 건 알아서 척척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먼저 나와서 자리를 맡아 놓는다던가, 지난 모임에서 했던 공부를 프린트해서 우리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은행에서 몰래 용지 빼돌리기 해서 프린트를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모임은 저녁 8시에 시작해서 보통은 10시나 11시에 끝이 났다.


회장인 메를린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으로 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고 멋을 부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저 같은 옷이라도 자주 입고 열심히 생활하는 타입이었다. 미국의 젊은 층은 한국의 젊은 층과 달리 양극으로 갈리는 현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다.


한국의 젊은 층은 어느 지역, 어느 도시 – 소도시든 대도시든 젊은 층은 유행에 민감하며 대체로 연예인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땅이 워낙이 넓고 사람들이 많아서 외모에 광적으로 몰입해서 꾸미는 층과 청바지 하나로 한 달씩 입고 다니는 층으로 나뉜다.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층은 아무래도 미드 시리즈를 보면 잘 나온다. ‘더 킬링’에서 시애틀의 빈민가나 약을 하거나 약을 팔고 사는 젊은 층이 대체로 그렇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가도 그런 지하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젊은 층이 많다.


같은 시애틀이지만 밸뷰 같은 곳에서는 지극히 외모에 멋을 부리고 꾸미는 젊은 층이 살고 있다. 뭐 어디를 가나 비슷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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