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린의 손길 7

소설

by 교관


7.


쌍둥이가 나에게 굳이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나의 이야기보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회장도 미국에서 자랐고 쌍둥이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으니 레이먼드 카버나 존 가드너의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존 가드너의 아내가 한때 수잔 손탁이었으며 그녀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레이먼드 카버는 존 가드너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존 가드너의 소설 ‘그렌델’은 뉴욕에서 고등학교 수업으로 배우는 책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렌덴의 이야기는 모임 회원들 누구나 좋아했다. 그렌델은 생긴 게 괴물 같아서 그렇지 그저 외모만 보고 죽이려 드는 인간들이 그렌델의 입장에서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금방이었다. 그러나 회장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회장은 맥주잔을 들어서 입에 갖다 대기만 할 뿐 마시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메를린의 특이한 점이라면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지만 회원들이 다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극도로 개인의 이야기는 아낀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나와 둘이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느낀 점이지만 모임에서 만큼은 아니었다. 쌍둥이와 최지은 씨가 회장에게 개인적인 어떤 질문을 해도 잘 회피하면서 웃으며 답을 했다. 그 웃음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한다. 그런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훈련된 기분 좋은 미소. 그걸 메를린이 해내고 있었다. 모두가 마치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는 듯 보였다. 겨울이고 곧 크리스마스라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게 기분 좋게 회식을 하고 헤어졌다. 이제 곧 해가 바뀐다. 12월인 것이다. 날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그런 계절인 것이다.




회장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하기에는 이상할 만큼 한국말이 유창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교포들처럼 발음이 뭉개졌다. 메를린은 뭐랄까, 그 나이 때에 비해서 고독해 보였다.


잘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외롭다기보다 고독에 가까웠다. 옆에 누군가 없어서 외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우주에 홀로 한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은 범우주적 고독 같은 것이었다. 그건 눈동자를 보면 그것을 조금 알 수 있었다.


메를린은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고 말을 했다. 상대방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메를린의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를 듣고 한다. 대화를 할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메를린과 대화를 할 때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때 그녀의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고독이 엿보였다. 약간 갈색을 띠는 눈동자는 한없이 공허함을 나타냈다. 다른 사람의 눈동자를 이렇게 심오하게 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사람의 눈동자는 이렇게 고독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깊은 고독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고독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우주적 고독이 눈동자를, 온몸을 덮을 것만 같았다. 회장은 언제나 진지했고 모임에서 누구보다 집중력이 좋았다. 우리에게, 특히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 뭔가를 하나라도 더, 제대로 알려주려고 노력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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