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
겨울의 초입에 모임을 하게 되어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메를린은 외모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에 입고 나오는 외투가 늘 같았다. 최지은 씨와는 달랐다. 최지은 씨는 20대답게 나올 때마다 외투가 달랐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메를린이 언젠가 한 번 둘이 있을 때 미국의 주민등록증, 아이디카드를 보여주었는데 그 속의 사진은 한국에서 보던 사진과는 달리 너무나 적나라하게 얼굴이 찍힌 모습이 카드에 붙어 있었다. 이가 드러나게 웃으며 몸을 살짝 비틀어서 촬영을 한, 그리고 드러난 치아에는 교정기가 채워져 있었고 얼굴이 태양빛에 검게 그을렸다.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사진은 아니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진으로는 민증을 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붙어 있다면 신분증을 재발급하거나 아예 들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친숙한 관계라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메를린은 그런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어느 날 나를 찾아왔었다. 모임도 아닌데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다행히 식전이어서 메를린과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얼굴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보여서 나는 그것에 대해서 결심을 하고 물어봤다.
우울하게 보인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 형제들과 떨어져 지낸 지 오래되어서 향수병 때문에 그런 것이냐? 메를린은 서브웨이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뭐랄까 화장을 했는데 피부에 스며들지 못하고 다 뜨고 작은 하얀 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보다 더 마른 것 같았다. 메를린은 워낙에 마른 스타일이라 거기서 더 말라 보이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겨울이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마른 것이 드러났다. 눈두덩은 툭 튀어나와서 영화 속 캐릭터를 보는 것 같았고 머리카락에는 생기가 빠져나가 있었다.
모임을 할 때에는 늘 밤에 만나서 인공조명 아래서 봐서 그런 걸 잘 보지 못했다가 낮에 보니 그런 모습이 쏙쏙 보였다. 메를린이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려해서 나는 캐묻지 않았다. 같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마도 점심을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앞에 앉아 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모임은 두 달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이브 전에 모임을 할 때에는 조촐한 파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술집이 아니라 모임 하는 카페에서 조용하게 우리끼리 했다. 그리고 연말이 있었고 그때에도 같이 치킨을 먹었다. 맥주를 마셨지만 메를린은 역시 술은 마시지 않았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그런지 최지은 씨도, 쌍둥이도 가끔 시간이 나면 나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곤 했다. 그만큼 모르는 사이가 모임을 통해 친밀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임이 두 달을 넘기고, 해가 바뀌고 난 뒤부터는 좀 기묘하게 흘러갔다.
성경책을 가지고 영어 공부 위주로 하던 모임이 성경 공부를 하는 쪽으로 더 기울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경 공부를 하는 와중에 간간이 영어가 들어가고, 영어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영어 공부도 했기 때문에 이상하지는 않았다. 단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