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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1. 2023

거짓말로 시작해서 결말이 알 수 없게 끝나는

일상 이야기

오뎅 먹으러 와서 스지만 잔뜩 먹었다는 건


거짓말로 시작해서 결말이 알 수 없게 끝나는 일상 이야기다


거짓말을 처음에 하는 걸 듣고서는 충격이 컸다.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온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할 수 있다니. 사람들은 비판보다 비난을 퍼부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런 수모를 겪는다. 어쩌면 그걸 수모라고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니까.


거짓말은 호러블 한 것이고, 테러블 하다고 우리는 배우며 커왔다.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충격은 실로 컸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 처음에 한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이전에 충격을 받았던 거짓말에 관한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거짓말이라는 건 살아있는 생물과 비슷하다. 시간이 흐르면 먼저 한 거짓말에 망각을 입혀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내 다른 거짓말에 눈을 돌리고 달려들게 된다. 거짓말은 인간처럼 새끼를 낳아서 번식을 한다. 거짓말은 생존 본능에 활력을 준다. 마치 에너지원을 공급받는 인공지능과 같다. 새끼를 치고 번식을 한 거짓말을 대했을 때 사람들은 이전 보다 수위가 높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 하게 된다.


거짓말이란 권력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힘이 막강하게 붙는다. 거짓말을 잘하기만 해도 사람들과 돈이 따라붙는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침묵’을 보면 이 거짓에 대해서 잘 나온다. 소설 속에는 거짓말 같은 사실을 넌지시 흘린다. 이건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거짓 같은 사실만을 들을 뿐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939


거짓말이 힘을 얻어 사람들을 모으면 진실은 가려지고 피해자는 결국 도망가거나 삶의 끝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 방송인은 하던 모든 방송이 거짓말로 인해 전부 못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프로그램만 그를 믿어주고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물론 법도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통해 지금까지 와버린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잃고 다치게 되었다. 가해자는 법정구속이 되지 않아서 심리를 받는 그날까지 계속 자신의 채널을 통해서 입을 털고 있다. 거짓말은 재미있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거짓말이란 그런 것이다.


집에서 자정을 지나 티브이를 틀었더니 전원일기가 하고 있었다. 301회였다. 8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제목은 ‘우리 마음의 영원한 고향, 서울행’이었다. 금동이가 아직 어린이였을 적 영상이었다. 양촌리에서 돈을 벌고자 서울로 간 노마 아부지가 아내가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가고 막노동을 하는데 서울에 올라온 일용과 용식(유인촌)이 너무 힘들게 사는 노마 아부지를 데리고 양촌리로 가려고 하고, 성질이 더럽고 욕쟁이 노마 아부지는 술만 마시면 엉망진창 인간으로 변해서 자신을 그만 놔두라고 한다.

301회에는 서울에 간 용식과 일용이를 친구가 버스를 개조한 국숫집에 데리고 가서 국수를 먹는데, 정말 맛있게 먹는다. 먹는 영상이 길게도 나온다. 거의 5, 6분 정도 된다. 그동안 일용과 용식이가 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후루룩 먹는지 오밤중에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막노동을 하는 곳은 서울이지만 양촌리보다 더 외진 곳으로 노마 아부지는 어린 노마를 집주인아줌마에게 맡기고 노동을 하지만 돈은 전혀 벌리지 않고, 노마는 감기가 걸려고 감기약 한 번 사 먹이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친구들이 양촌리로 돌아가자고 해도, 고향에 간들 살 집과 뭘 해야 하는지, 너무나 막막하기만 하다. 친구의 괴로움을 보다가 더 괴로운 용식이가 새벽에 집에 전화를 걸어 아부지를 깨운다. 양촌리 회장인 최불암이 자다가 일어나서 그 괴로운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데리고 내려오라고 한다. 그 사이에 용식과 일용은 2대 1로 노마 아부지와 난닝구 바람으로 결투를 펼치고, 울고 짜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소리를 지르고,,,


전원일기 속 301회의 주인공들의 나이는 아마 20대일 것이다. 귀동에게 안겨 있는 노마도 2살인가?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고. 80년대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지금 2천 년대가 넘어가는 지금은 훨씬 삶이 나아지고 살기가 편안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절대 그렇지 않다. 이건 김미경 강사가 한 말인데, 돈을 벌었는데 안 모아지지, 시댁, 친정 들어가는 돈은 많지. 40대가 되면 애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는데 이때부터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30대에 결혼해서 애 낳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40대가 되면 조급한 것이다. 대부분 가장이 49살에는, 50살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뭔가를 이루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니까 무너지는 사람은 지지대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김미경 강사가 보니 40대 남자들이 너무너무 딱한 것이다. 멋 모르고 결혼을 해서 돈은 본인이 다 버는데 애들이 그 돈은 다 쓰지, 애들이 그렇다고 돈을 쓰면서 아빠, 감사합니다! 하면 좋은데 애들은 중학생만 되면 아빠를 집안에서 제일 싫어한다. 아빠는 점점 애들과 멀어지기만 한다. 학교 다녀온 애들에게 시험 잘 봤냐 하면, 예으 같은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그냥 방에 쓱 들어가 버린다. 어떤 아빠는 거실에 앉아 있으면 방에서 나 나가니 밖에 나가는 동안 아빠는 방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남편들은 서럽다. 집안에서는 친한 게 권력이다. 안 친하면 권력이 전혀 없다. 엄마가 아이들과 친하면 집안에서 제일 권력자다. 일드, 츠츠미 신이치 주연의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를 보면 아주 잘 나온다. 코믹한 드라마지만 남편은 집안에서 빨래, 식사준비, 설거지까지 해야 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목욕물까지 받아놔야 한다.


남편은 집 안에서 권력이 하나도 없어서 소파에 쓰러졌다가 자기 침대에 쓰러졌다가 어딜 가도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용돈 30만 원 가지고 살다 보면 아이들에게 전부 투자한다. 학원비, 용돈,,, 남편은 자신에게 투자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 40대가 직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내가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근데 이 불안이 혼자만의 불안인 것이다. 혼자서 떠안고만 있다. 누군가에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자기에게 아무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게 지금 현재, 2000년대를 넘어선 요즘 많은 40대 남편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이다.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투자하지 않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남편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50대가 오는 게 두려운 것이다. 고독사하거나 죽는 남편들 중에 50대보다 40대가 지금은 더 많다고 한다. 남편들은 불안하고 초조하게 50대를 맞이한다. 하지만 김미경 강사는 말한다. 40대에 다 이루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면 예전에 비해 조금 낡고, 조금 못쓰게 되었을지라도 그 자리에서 인생의 반은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50대부터 또 이루면 된다.


자극과 거짓과 모멸과 충돌이 판치는 요즘, 이 모든 것에서 잠시라고 벗어나고 싶다면 제주도에 있는 곶자왈에 가면 참 좋겠지만,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현대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딘가 훌쩍 떠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하는 ‘나의 첫 심부름’을 보자.

나의 첫 심부름은 일본의 관찰 예능으로 2008년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미미하게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을 건드리는 게 느껴진다. 2세에서 5세 정도의 아이에게 생애 첫 심부름을 시키고 잘 하는지 그걸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 편당 짧은 분량은 7분짜리부터 길면 20분 정도 된다.


우리는, 현대인들은 방송과 유튜브 영상으로 너무 자극적인 일들에 노출되어 있고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아, 나 좀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때 ‘나의 첫 심부름’을 보라.


고작 3세 정도 아이가 심부름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잠깐 있었는데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이미 방송과 카메라에 적응이 되었고 아빠를 따라 많이 노출이 된 아이들이고, 일본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심부름을 하게 되는 일이다. 신밧드의 모험인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이제 엄마랑 같이 갈 수 없다는 말에 이미 울기 시작하는 아이부터, 또 엄마 마다 달래주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이제 너는 3살이야, 애가 아니잖아, 너는 2살이 아니고 3살이야. 그러면 아이가 그걸 받아들이고 눈빛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 할 수 있어!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세상을 알아 간다.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다가 길거리에 핀 꽃이 있으면 주저앉아서 꽃을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똑바로 가기를 본능적으로 피해 간다. 옆길로 샌다. 어떤 아이는 아빠의 심부름으로 물고기를 들고 오다가 다 쏟기도 하고, 자판기에 동전까지는 넣었는데 버튼을 누르지 못해서 20분 정도를 고민만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보고 느끼고 반응한다. 그리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매회 기대감과 함께 또 이번 아이는 어떤 기상천외하고 천진난만함으로 우리를 웃고 울릴까 하게 된다.


10분짜리 2화에서는 엄마 심부름하다가 하지 않고 놀다가 전화로 엄마에게 거짓말하다 걸리기도 하고, 11분짜리 3화에서는 심부름으로 양배추와 양파를 가져오는데 밭에서 뽑아오기도 하는 등 정말 대견한 모습도 있다.


이런 아이들의 관찰 예능이 가능한 것은 이웃 어른들이 전부 이 아이들의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커가는 모습을 알기에 심부름을 오면 아니, 이 귀여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심부름을 왔나, 하며 이웃 어른들 모두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지켜준다.


도쿄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라 가능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심부름을 적극적으로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위에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것 까지는 성공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웃 어른이 다가가서 직접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아이가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렇게 이웃 어른들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 준다.


아이는 부모만이 키우는 게 아니라 한 사회가 같이 키운다는 말을 아주 잘 알 수 있는 방송이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아이들의 성장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아이의 실패가 실력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https://youtu.be/mOsuNes31K0

Netflix Japan

전원일기 301화에서 갈등 끝에 귀동이가, 즉 노마 아부지가 어린 노마를 안고 용식과 일용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고향 친구들 – 응삼이를 비롯한 친구들이 잘 왔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노마는 비록 엄마는 없지만 ‘나의 첫 심부름’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양촌리의 마을 어른들이 자신의 아들처럼 돌보며 키워줄 것이다.


그래,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한 번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내자. 행복하다는 거 좋은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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