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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5. 2022

침묵

하루키의 단편 소설



지난번에 한 번 언급했던 단편 소설 ‘침묵’을 가지고 어제(라고 쓰고 벌써 네 달이 넘었음) 모임에서 이야기를 했다. 이 소설은 하루키'식' 공포이야기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루키식 공포물은 드러나는 무서움이 아니라 피부의 안쪽면에 붙어 있는 그런 공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같은 무거운 공포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긁어내는 그런 무서움이다.


미드 '아웃사이더' 같은 그런 공포다. 아웃사이더는 스티븐 킹이 2017년에 쓴 소설을 HBO가 합작해서 만들어냈다. 10부작으로 시즌 1로 마무리를 하는데 아주 느린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카메라의 앵글도 다른 영화들과는 많이 다르다. 악 또는 악마가 어린아이만 파먹는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걸 전혀 믿을 수 없는 형사가 사건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이야기다. 악마, 또는 형태 변이자, 몇 천 년 동안 아이만 파먹는 괴물의 설화를 가지고 만든 이야기지만 영화 내내, 10부작 내내 괴물의 모습이 나타나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형사와 사람들이 사건에 다가가는 내용에 맞춰졌다. 그래서 몹시 긴 호흡이며 아주 느리다. 그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인간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하루키의 공포는 대체로 이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루키가 스티븐 킹을 좋아해서 분명 하루키도 이 시리즈를 보면서 미간에 주름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침묵'은 주인공에게 회사 동료인 오자와가 고등학교 때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다.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것이 걱정이 된 부모님이 친척이 운영하는 복싱장에 보내게 된다. 복싱을 배우면서 오자와는 권투라는 운동은 상당히 고독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복싱을 배우는 사람은 링 밖에서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복싱을 배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오자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동급생인 아오키라는 친구를 때리게 된다. 아오키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친해지기 전에도 오자와는 아오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아오키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것이 딱 집어낼 수 없지만 거짓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아오키는 진짜로 하지 않고 허울과 껍데기뿐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오자와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복싱을 하면서 학교의 어떤 시험이든 일등을 하면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시험에서 오자와는 일등을 . 영어 시험은 아오키가  일등을 하던 과목이었다. 일등을 빼앗긴 아오키는  뒤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자와가 커닝을 한 것이라고. 소문은 돌고 돌아 오자와의 귀에 들어왔다. 화가 난 오자와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수련이 덜 된 오자와는 아오키와 말다툼을 하던 끝에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뒤로 생활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아오키와 오자와. 어느 날 같은 반의 마쓰모토라는 친구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되었다. 학교의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오키는 오자와에게 맞았던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아오키는 몇 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첫째, 마쓰모토는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둘째, 오자와는 오랫동안 복싱을 배워왔다.

셋째, 나는(아오키는) 중학교 때 오자와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흘리게 된다. 그 뒤로 사실이 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치 복싱을 배운 오자와가 마쓰모토를 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오자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오자와는 아오키를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다. 오자와는 제대로 아오키의 눈을 쳐다봤다. 후에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적정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싫어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 사회에 반드시 들어가 있으며 그들의 소리를 내어서 전혀 아닌 것이 그런 것으로 이끄는 역할도 하게 된다. 즉, 선동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그런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의 선곡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니그마의 리턴 투 이노센스 https://youtu.be/Rk_sAHh9s08

영상출처: Enigma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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