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아, 가을
요 며칠 조깅을 하면서 보는 하늘은 가스층이 걷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나는 이제 너의 바람과 의지와 무관하게 가을의 모습으로 갈 거야, 흥”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모든 것이 변하고 바뀐다. 호르몬도 색감도 옷도 다 바뀐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보면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대서양 너머 저 멀리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 소리는 사막 끝까지 메아리쳤다,라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하루키 식으로 10월, 가을의 급변함을 말하고 있다. 가을이란 그렇다. 여름의 끝자락을 아무리 잡고 있어도 급변하듯 가을은 오고야 만다.
저녁에 조깅을 하고 있으면 잠자리들을 많이 본다. 고추잠자리들이 하늘을 장식했다. 가을이 오고, 잠자리가 눈에 보이면 어김없이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 ‘아, 가을’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을 말할 때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쇠약하여 너훌 너훌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모습을 오사무는 말하고 있다. 잠자리의 모습이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멋진 말 ‘가을은 여름의 타고 남은 것’라고 했다.
다자이 오사무 – 오, 가을
본직이 시인이라면 언제 어떤 주문이 있을는지 모르므로 항상 시제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가을에 대하여]라는 주문을 받으면, 그래 좋아, 하면서 [가]의 서랍을 열고, 가 줄의 여러 개 노트 중에서 가을 부문 노트를 꺼내놓고는 침착하게 그 노트를 살핀다.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쓰여 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나약해져서 육체는 죽은 채 정신만으로 비틀비틀 날고 있는 모습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잠자리의 몸이 가을 햇빛에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이라 쓰여 있다. 초토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이라고도 쓰여 있다. 코스모스, 무참하다,라고도 쓰여 있다.
언제였던가, 교외의 메밀국수집에서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식탁 위의 낡은 화보를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 처절한 사진이 있었다. 전체가 타버린 들판, 바둑판무늬 유카타를 입은 여인이 달랑 혼자서 피곤에 지쳐 주저앉아 있었다. 난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딱한 여인을 사랑했다. 무섭도록 욕정마저 느꼈다. 비참과 욕정은 표리인 모양이다. 숨이 막힐 만큼 괴로웠다.
그리고 밑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코스모스에 관한 글이 이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공허가 있고 그 공허 속에는 허무가 가득하다. 그리고 황량함이 마지막으로 허무의 자리에 차고 오른다. 이번 여름에도 폭염이었다. 폭염 속에 모든 것이 다 타고 남은 것이 가을로 이어진다.
폭염에 활활 타오르는 저 하늘,
붉은색으로 세상을 다 태운 여름이 울고,
우는 틈을 타서 가을은 몰래 숨어 들어와 치장을 하고 교활한 악마처럼 잠자리를 투명하게 비춘다.
가을은 저 여름이 온전히 타고 남은 것.
타고 남은 재를 뚫고 그을음에 붙어 코스모스가 피고 나면 가을은 무섭도록 나를 노랗게 물들인다.
오늘의 선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장밋빛 인생 https://youtu.be/T6OuhCCPL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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