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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9. 202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첫 번째 이야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으려고 펼쳤더니 그 안에 돈이 들어있어서 놀랐고, 삼만 원이나 꼬불쳐 넣어놔서 놀랐고, 책 깨끗하게 보기로 유명한 나인데 여기저기에 줄이 그어져서 놀랐다. 뭐 그건 그렇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가장 희한하고 기묘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출퇴근 시간도 없고, 정해진 업무량도 없고, 과정이 힘들고, 결과가 눈에 보이듯 확실하지도 않고, 파자마만 입고 일을 할 수 있고, 늘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가 예민함이 극에 오를 때가 있는 직업이다. 너무 행복하면 일을 못 할 수도 있고 늘 불행할 수도 없다. 언제나 일정한 패턴과 기복 심하지 않은 적정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루키에게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합니까,라고 한다. 하루키는 늘, 언제나 그렇듯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라는 확고하고 섬뜩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는데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소설가 대부분이 많은 책을 읽는다.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다 알다시피 그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포크너, 커트 보네거트, 잭 케루악 등 하루키의 팬들은 하루키가 말하는 여러 소설가들의 소설도 찾아서 읽어 봤을 것이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실제로 문장을 써보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순위로 보자면 그건 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소설을 쓰면 좋은 점이, 소설을 누군가를 위해서 쓰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즐거운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루키는 그걸 이미 알아 버려서 신나게 소설을 쓸 때에는 집중해서 소설을 쓴다. 그렇게 보인다.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내가 똑같다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내가 좀 달라졌다면 책은 그야말로 오로지 나의 편인 친구다. 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된다.




오늘의 선곡은 하루키가 소개하는 재즈 곡 찰리 파커의 Bloomdido https://youtu.be/1MCGweQ8Oso

catman916


앨범 첫머리에 담겨 있는 <블룸디도>에서 인트로를 연주하는 짜릿짜릿한 심벌즈 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정말 좋습니다. 찰리 파커에 대해 쓴다면서 버디 리치 얘기만 늘어놓고 말았다. - 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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