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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8. 2023

28. 사진부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2

소설


2.


 날이 몹시 무덥고 열기가 푹푹 쪄서 할머니는 땀을 흘릴 법도 했지만 땀은 흘리지는 않았다. 그 모습이 몹시 기이했다. 하지만 내 얼굴의 관자로 땀 한 방울이 두피에서 내려왔다. 나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앉아서 할머니를 관찰할 뿐이었다.     


 서서히 오전 시간이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시계가 없었지만 재래시장에 인상을 찡그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11시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의 골이 얼굴의 반을 잡아먹고 있었다. 깊은 주름을 타고 빛이 주름의 골을 밝게 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도 자신의 쪽파를 사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카메라의 뷰를 통해서 바라보았다. 땀이 목으로 흘러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머리가 데워진 주전자처럼 뜨거웠다. 팔월의 태양은 그런 것 따위 봐주지 않는다.     


 재래시장은 정오를 향해 갈수록 활력을 띠었다. 수박을 파는 리어카 앞에는 좀 더 맛있고 싱싱한 수박을 사려는 아주머니들의 엉덩이가 보였고 고등어를 파는 곳에서는 고등어 대가리가 옆에 있는 플라스틱 통에 계속 쌓였다. 그럴수록 파리와 함께 비린내는 코를 찔렀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어딘가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보리밭에 시원한 열무김치를 비벼대는 냄새였다. 그 위에 들기름 한 방울을 떨어트려 위장을 더욱 쥐어짜게 했다. 열무보리밥이 비벼지는 냄새가 사라지고 나니 손짜장의 냄새가 나를 덮쳤다. 미간은 상당히 좁혀졌다.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싸들고 온 도시락을 펴서 먹었다. 냉콩국수 리어카 앞에 데면데면 앉아 후루룩 국수를 먹는 사람, 재래시장은 누구나 할 거 없이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었다.     


 쪽파를 파는 할머니는 표정도 없었지만 밥을 먹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싸들고 온 도시락도 없는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할머니에게 밥을 먹어보라고 권하는 장사꾼도 없었다. 할머니는 뜨거운 태양을 묵묵하게 받으며 쪽파가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지켜보며 나 역시 머리가 타 들어가는 열기를 받으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고등어 대가리는 점점 쌓였고 많은 장사꾼의 물건이 사라지거나 팔려나갔다. 하지만 할머니의 쪽파는 처음의 상태 그대로였고 할머니의 표정 역시 처음처럼 주름이 백오십 개 정도가 얼굴에 골을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주름의 도화지에 눈을 붙이고 코와 입을 붙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도 뜨거운 태양 밑에 매일 있어서 그런지 얼굴은 이미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해가 비치는 곳으로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얼굴이 또래에 비해 까맣게 탔다. 나는 재래시장에 오기 일주일 전에는 지게를 지는 사람을 담고 싶어서 논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게를 지고 다니는 사람은 좀체 없었고 나는 물어물어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끝끝내 지게를 진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태양을 받으며 돌아다녔다. 이미 나의 몸에서 태양의 냄새가 났다.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할머니의 쪽파를 사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 건너편에서 각종 파를 팔고 있는 곳의 가판대는 그새 바닥을 보였다. 쌓여 있던 파들이 주인을 만나서 다 떠났다.    


 할머니는 긴 팔의 옷을 걷고 있었는데 위태롭게 보이는 팔목으로 오래된 손목시계가 보였다. 손목시계의 줄은 검은 가죽으로 갈라지고 해져서 잡아당기면 그대로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나의 팔목을 보았다. 나의 팔도 역시 말랐고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그렇다고 몸을 돌려 아무것이나 찍을 수는 없었다. 한 달을 모아야 필름 몇 통에 인화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셔터의 남발을 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눈과 몸은 순간포착을 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하지만 순간포착을 하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심지어 사진을 가르쳐 줬던 선배들의 손에 들린 방망이에게 엉덩이를 내어주며 배웠다. 카메라에 사람을 담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진실을 담는 것이다. 그게 쉬운 것은 아니다,라며 나는 많이 혼났었다. 나는 침착하게 배움의 길을 닦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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