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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9. 2023

28. 사진부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3

소설

 3.

  

 그런데 나는 지금 나를 책망하고 있었다. 일단 생각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무더위를 어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할머니에게서 어떤 모습을 봤다. 그것은 가망성이며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할머니는 곱게 몸을 말고 앉아 있지만 할머니도 몹시 더울 것이다. 얼굴의 깊게 파인 주름은 밝은 여름의 오후 아래에서도 그늘을 만들었다. 나는 배가 몹시 고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있어서, 들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떤 동기부여 같은 것을 던져주었다. 나는 분명 믿음이 있었다. 포기를 하고 등을 돌리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진다. 나는 눈을 한 번 비볐다. 눈이 따가웠다. 땀이 눈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건어물 점포에서 누군가 나와서 시장의 뜨거운 바닥에 물을 뿌렸다. 더운 김이 확 올라왔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카메라를 통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를 지켜보는 몇 시간 동안 나는 할머니가 지니고 있는 관념, 사상, 흘러간 과거 따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내가 닿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 구체적인 형태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더위에도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자신의 영역 속에서 표정의 변화 없이 흐르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밥을 사 먹으려고 넣어 두었던 이천 원을 쪽파를 살까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 흐트러진다. 할머니도 나도 이 시간을 견디는 어떤 것에 대해서 무너지게 된다. 생각을 다시 고쳤다.     


 두피에서 땀이 몽글몽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이마로, 눈썹 위로 흐를 것이다. 태양은 고스란히 머리에 내려앉아 지치지 않고 땀을 만들었다. 땀은 방울로 형성되는 순간 머리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이마로 확장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눈썹 위에 잠시 멈추었다. 마치 땀이 머리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얼굴에 저렇게 깊고 깊은 주름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팔목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꽉 달라붙어있는 오래된 손목시계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저리면 자세가 바뀌었지만 할머니는 오전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그대로였다. 누구도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어떤 누구의 손도 바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긴 시간 동안 가족도 찾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쪽파를 팔아서 오늘 저녁의 찬거리를 다시 구입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 쪽파를 팔지 못하면 오늘 저녁은 어쩌면 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를 향해 화를 낸다거나 큰 소리를 내서 운다거나 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선풍기가 겨우 돌아가는 더운 방에서 피곤에 지쳐 물을 한 컵 마시고 잠이 들 것이라는 것을.     


 그 생각을 하니 눈이 따가웠다. 눈썹 위에 머무른 땀이 눈에 들어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눈물이었다. 눈물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렀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 한 명이 할머니에게 쪽파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쪽파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아주머니에게 건네주고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손바닥에 오백 원을 올려놓았다. 그 순간 할머니의 표정이 미묘하지만 바뀌었다. 아주 미세하게 주름의 배열이 바뀐 것이다.     


 나는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의 뷰로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조금 부옇다. 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올림푸스펜의 셔터를 분주하게 눌렀다. 틱, 틱 하는 아주 조잡한 소리지만 그때만큼은 크고 우렁차게 들렸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 다음 몸을 돌려 등을 벽에 기댔다. 숨을 크게 쉬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다.      


 날이 몹시 더웠다.


[끝]



패닉의 달팽이 https://youtu.be/zraW-fU00zI

kiseon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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