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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6. 2023

29. 선과 악의 모호한 대화

소설

 


 우리는 슈바빙의 제일 구석진 자리의 지정석에 모여 앉았다. 상후와 효상과 개구리와 나는 기철이와 득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난 베오울프의 이야기보다 그렌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 덴마크의 전설인 베오울프에게 팔을 잘리고 결국 죽음을 당하지만 그 어미가 복수하려고 하잖아.”     


 “맞아, 괴물이고 악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베오울프 쪽이 악당이고 악마의 모습이겠지. 그건 도로시 일행을 괴롭히고 죽이려는 엘파바와도 닮은 구석이 있어. 동생을 죽인 도로시가 밉지 않았겠어?”  

   

 둘은 척척 죽이 맞았다.     


 “우린 선과 악을 구분해 놓기를 좋아하고 선으로 마음이 기울기를 바라지만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악인 것인지 명확한 구분이 없어. 영웅이 있으면 악당이 있고, 적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안겨 준 영웅이 우리의 편이거나 우리 국민이거나 우리라고 하는 것이 선이지.”     


 “결국 선이란 우리 편에 서 있는 것이고 반대편이 악이라는 것이야.”     


 “당한 쪽의 입장에서 우리가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악당이고 악마야. 그런 의미에서 존 가드너의 그렌델이 너무 읽고 싶어.”     


 “하지만 읽은 사람들이 중간 과정의 오류 때문인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느낄 수가 없다던데.”   

  

 여기서 두 사람은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그렌델를 읽었었다. 하지만 오류라든가 번역에 있어서의 문제점 같은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낄 수 없어서 모른척했다.     


 “안타까운 일이야. 번역은 또 다른 새로운 글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작업인데.”     


 여기까지는 우리도 알아 들었다. 다음에 하는 말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물이 얼어붙어 얼음이 될 때, 물은 천천히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얼음으로 변화한단 말이야. 자연이란 정말 경이로워.”


 이 녀석들의 머리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참 모를 일이다. 개구리와 상후와 효상과 나는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있었지만 전부 딴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비단 물이 얼음으로 될 때뿐만이 아니야. 우리 삶도 그래. 무질서가 질서로 변화하는 순간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 순간을 지나치지 않는 시선을 가져야 해.”     


 개구리가 음료 잔을 돌렸다. 상후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연은 비선계형이며 비선계형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종류의 시냅스가 있는데 그중 음의 영역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피드백의 현상이 기괴하기도 하고 아주 흥미로워.”     


 그러더니 서로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낄낄거리고 웃었다. 대화의 내용을 들어보면 이과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득재와 기철이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서로 웃어가며 신났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노래 중에 ‘one'이 던지는 주제를 가지고 교지에 실을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메탈리카의 원은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효상이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뮤직비디오는 묵직했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노래를 통해 전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교지를 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뮤직비디오의 암울하고 묵직한 내용보다는 제임스를 비롯한 멤버들이 입고 있는 게스 청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게스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중에 어떤 청바지가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지기만 했다.


 “야, 개구리, 넌 어때?”


 개구리는 큰 눈으로 “비비안 웨스트 우드. 그리고 새 옷이면 다 좋아.”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이런 물질적인 면이 가득한 대화에 싫증이 나서였을까.


  득재와 기철이는 선과 악의 모호함에 대해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조용하던 상후가 말을 했다.


 “나중에는 수학과 물리를 잘하는 몇 명에 의해 세상은 움직일 거야. 그리고 대부분은 그 단체에 종속되어서 배역으로 살아갈 뿐이야. 지금 어른들을 보면 알 수 있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아마 그 몇몇에 의해 전쟁도 일어나고 대 다수의 나머지는 그 전쟁의 피해를 보거나 뒤처리를 위해 목숨을 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곰돌이 푸우처럼 살아가도록 해야 해.”


 모두가 상후를 쳐다보았다.


 “곰돌이 푸우?”라고 우리는 말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고 푸우가 말했어. 우리는 푸우처럼 살아가는 거야. 쉽지 않겠지만.”                    




메탈리카 원 https://youtu.be/WM8bTdBs-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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