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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0. 2023

33. 세상의 벽

소설

  


 겨울방학에 학교에 나왔다. 사진부 암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득재가 놀러 왔다. 득재는 2학년부터 겨울방학에 울릉도 집으로 가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겨울방학을 보내는 것만큼 지겨운 일도 없다고 했다. 득재는 내가 찍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여름에 폭염이 덮친 일요일, 중앙시장에 나가서 파를 파는 할머니를 필름 2통을 써 가며 담아왔다.      


 흑백사진 속에는 할머니 얼굴의 깊은 주름과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쭈글쭈글한 손이 있었다. 그런 사진만 수십 장이었다. 득재는 가만히 사진들을 보더니 나에게 사진을 찍은 경위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득재 녀석은 3학년 학기가 시작되는 문예지에 재래시장에서 할머니를 담은 학생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건 나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올 댓 재즈에 모여서 마가렛 버그화이트의 사진에 대해서 내가 하는 말을 아이들은 듣고 있었다. 나는 사진 이야기를 하면 신나게 말을 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여류 사진가치고 최초로, 미로의 크렘린 궁으로 숨어 들어간(히틀러를 피해) 스탈린을 담았고 물레를 돌리는 간디를 담았다. 간디는 그 후 몇 시간 뒤에 암살되었다고 한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그 사진 한 장을 담기 위해 피사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대단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중에 득재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그리고 교지에 실은, 할머니 사진을 담은 학생의 이야기를 했다. “나 울지는 않았어”라고 득재에게 말했지만 득재는 “눈물을 흘린 것도 운 거야. 울었다고 해 자식아, 드라마잖아, 눈물은 그냥 나오는 거야. 이유가 있어야 흐르는 게 아니라고.” 득재는 그렇게 말했다. 교지가 발간되면 각 학교의 문예반 아이들도 읽는다.     


 올 댓 재즈에는 개구리도 함께 했다. 학공여고에 다니는 개구리는 자신의 학교 교지에 실린 자신의 글도 들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개구리의 글은 정말 문학적이었다. 읽어보면 대번에 원고지를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을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득재와 기철이도 글을 몹시 잘 썼다. 둘은 스타일이 달랐다. 기철이가 객혈하는 후피동물의 피부 같은 글이라면 득재는 좀 더 직유가 있었다. 득재는 교지에 내가 찍은 사진도 한편에 조그맣게 실었다. 학교에서는 사진을 교지에 실으면 돈이 더 든다고 안 된다 했지만 득재는 바득바득 우겨서 끝내는 할머니의 모습을 실었다. 그것은 어쩌면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사실 득재는 개구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개구리가 좋아하는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을 올 댓 재즈에 오면 늘 틀어 달라고 올리브에게 말해서 개구리가 없어도 늘 그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개구리는 기철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 기철이는 방석을 훔친 여중생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아, 인간의 마음은 스레드.

     

 자기네 학교 문예부장인 개구리가 말을 하면 득재가 입을 벌리고 보고 있었고, 기철이가 말을 하면 개구리가 그런 눈빛을 띠었다. 올리브는 나는 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감자튀김을 한 접시 내왔다. 우리는 생맥주를 죽 들이키고 감자튀김을 씹어 먹었다. 갓 튀겨낸 감자튀김은 삼계탕보다 맛있어야 했지만 이상하게 올리브가 튀기면 그 맛이라는 것에서 멀어졌다. 단지 뙤약볕을 받은 돌처럼 뜨거워서 아이들의 얼굴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서로 보며 웃음을 짓고는 또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마가렛 버크화이트에 대해서, 로저 워터스에 대해서, 장미의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단단한 벽 같았지만 그 벽은 견고하고 너무 단단해서, 그래서 깨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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