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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2. 2023

32. 토요일 오전 11시 같은 사람

소설

    


 일요일 오후 4시는 어둡고 탁한 연기가 점점 스며오는 답답한 방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드는 시간이다. 일요일 오후 4시는 너무 어글리 한 시간이었다. 도로 밑 지하에 숨어 사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추하고 더러운 생물체 같은 시간이 일요일 오후 4시였다.


 세상에 그런 시간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꼿꼿한 자세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일요일의 오후 4시가 지나면 곧 어두워지고 저녁을 먹고 나면 잠이 들고 월요일이 온다. 그 다가옴이 몸서리 쳐질 정도로 싫다. 월요일 1교시가 일요일 오후 4시 같은 사람, 수학이 교실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요일 오전 11시는 카일리 미노그와 제이스 노도반이 같이 부른 ‘Especially for you’ 같은 시간이다. 토요일 오전 11시는 많은 가능성을 잔뜩 지니고 있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만 하고 나면 우리는 자유로운 곳으로 가서 음악을 듣거나 음료를 마시며 함성호의 시와 지미 핸드릭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얀 샤우덱 사진 속의 주인공처럼 발가벗고 바닷속을 헤엄쳤다.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는 없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물고기가 되어 유영을 했고 물고기는 우리에게 정중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다. 토요일 오전 11시를 표현하자면 그런 것이다.     


 그녀가 토요일 오전 11시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온 편지를 이만큼 들고, 아이들과 만나지 않는 시간에는 슈바빙으로 가서 그녀의 편지를 읽었다. 그녀와 나는 편지를 통해서 쿠릴열도와 물고기의 관, 생의 일요일과 이어폰을 타고 외계로부터 오는 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꽤 들뜨는 흥분 같은 것이었다.     

 ‘비를 닮은 그녀와 언젠가는 우산을 쓰고 걸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비가 오는 넓은 땅 위에 작은 우산 속은 우리만의 영역이다. 작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에 젖지 않는 바다를 보며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이스페셜리 포유를 같이 듣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살며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나 멀리 있던 그녀가 내 옆에서 같은 우산을 쓰고 비슷한 곳을 바라본다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며 나는 도자기 같은 그녀의 옆모습을 지치지 않고 바라볼 것이다.     


 나는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내 그런 상상을 했다. 그녀는 토요일 오전 11시 같은 사람이었다.




Kylie Minogue and Jason Donovan - Especially For You (Official HD Video) https://youtu.be/yalM-2ih7RU

P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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