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외국 가수들
일전에 스타다큐 허준호 편에 윤복희가 나왔다. 윤복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다. 나는 윤복희와 패티 김의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패티 김의 공연을 세 번 보고 나불나불 어쩌고 저쩌고.
허준호 스타다큐 방송에서 윤복희가 연극 공연 도중 그대로 쓰러져 얼굴이 무대에 찧고 말았다. 아찔했는데 윤복희가 일어나서 계속 공연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윤복희가 연극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윤복희가 처음 연극을 했을 때가 77년인가 그렇다. 1977년 MBC ‘토요일 토요일밤에‘를 보면 윤복희가 나와서 처음 출연한 연극을 홍보한다. 윤복희가 처음 도전한 연극이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담은 연극이었다.
뇌피셜인데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검색검색) 윤복희가 미국을 다녀온 후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나 가창력이 아주 좋아졌다. 윤복희를 미국으로 데려가 미국 무대에 올린 사람이 누구일까. 그 사람이 바로 세계의 재즈 황제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60년대에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왔다. 60년대는 먹고살기가 팍팍했지만 낭만이 가득했다. 그 당시에는 넷킹 콜도 공연을 와서 한국에 반해서 아리랑을 자신의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왔다가 윤복희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데리고 가서 미국무대에 세웠다.
70년대는 연극이 활발했고 더불어 노래의 전성기였다. 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60년대에는 집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낙으로 사람들이 살았다. 그 시대에는 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소설을 사람들이 악착같이 읽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문화를 소비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가 극장의 영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70년대 이르러서는 노래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70년대에 집집마다 양문형 티브이가 보급이 되었다. 비록 흑백이지만 사람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 후 방안의 티브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스타가수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돈을 들여 외국 가수들도 불러 들였다. ‘토요일 토요일밤에’에도 아주 앳된 진추하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진추하가 노래를 끝마치고 통역을 누가 하냐면 너무나 어린 진미령이 나와서 통역을 한다.
진추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는데 스무 살의 진추하는 아주 깨끗한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진추하의 유명한 노래도 많다. 원 서머 나잇을 한국인들은 많이 좋아할 텐데. 진추하의 졸업식 노래 ‘그레쥬에이션 티얼스’가 아주 좋아서 이선희가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첫 시작을 알리는 피아노 음을 듣자마자 학창 시절의 졸업식이 확 떠오르는 기묘한 노래다. 졸업의 눈물은 이선희 버전의 노래도 아주 좋은데, 그나저나 이선희 뭐 어떻게 된 거야? 이번에도 이승기 전 소속사 계속 뉴스에 나오던데.
진추하가 중국어로 말하고 진미령이 통역하고. 그리고 진추하와 진미령이 같이 노래를 부른다. 진추하의 노래 ‘이 생명 하다도록’을 부르는데 진추하가 피아노를 치며 중국어로 1절을 부르고 진미령이 2절을 받아 한국어로 부른다. 진미령은 정말 노래를 너무나 똑 부러지게 부르는데 음을 너무 높게 잡았는데 그걸 해낸다. 얼굴이 학생 얼굴이다. 하하하. 진미령하면 장덕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다음에 하자.
진추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노래를 아주 곱게 부른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인들이 좋아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민요나 가요를 곱게 부르는 걸 좋아한다.
진추하는 40분짜리 이 방송에 나와서 무려 네 곡이나 부른다. 물론 영화 홍보 때문에 한국에 왔지만 이때가 네 번째 방한이었다. 나이로 보면 고작 스무 살인데 말이다. 이 영상에서 재미있는 건 군대 간 전영록을 면회 간 백설희가 나와서 면회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 전영록에 대한 애틋함을 말하며 한곡 부른다.
https://youtu.be/xtTkpl5-5mU 1977년 토요일 토요일밤에
이번에는 지난번 88 서울올림픽 한강 축하 무대 공연에서 정수라, 이지연, 혼다 미나코, 소녀대의 모습이다. 비가 욕이 나올 정도로 엄청났다. 굉장하다. 하지만 한일 그 어떤 가수도 폭우에 굴하지 않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정수라가 노래를 부를 때 정말 비가 얼굴을 막 때리는 게 느껴진다. 정수라는 여기서 ‘아! 대한민국’을 부르는데 이 노래 알겠지만 너무 높고 어렵다. 정수라가 노래를 잘해서 술렁술렁 넘어갈 노래 같지만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정수라는 요즘이 더 예쁘고 노래도 여전히 잘 부르는 거 같다. 한때 재즈로 전향한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 뇌피셜이다. 정수라의 노래 중에 ‘어느 날 문득’을 지난번에 임영웅이 불러서 정수라가 훌쩍거렸는데 그 영상이 이천사백만뷰가 넘었다.
이지연도 나와서 멋지게 노래를 부른다. 이지연이 노래를 부를 때 옆의 무대에서 누군가 비를 홀딱 맞아가며 너무나 즐겁게 이지연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이지연은 정말 짧게 활동한 것에 비해 모든 노래가 사랑을 받았다. 여기 사회자가 이덕화와 최윤희다. 최윤희는 수영선수 출신이고, 유현상의 아내고, 이지연은 유현상이 백두산을 하다가 머리를 싹둑 자르고 이지연을 가수로 데뷔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소녀대도 노래를 불렀다. 비가 그쳤다. 이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본어로 된 노래를 한국에서 불렀다. 소녀대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뇌피셜이니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 소녀대에 관해서 너무나 재미있고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채널이 많다.
소녀대는 후에 한 명이 교체되면서 활동을 한 멤버는 총 네 명이다. 소녀대는 약간 얼굴을 알리지 않는 가수로 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쿠도 시즈카 등 넘사벽 아이돌이 있어서 소녀대가 전면에 서서 그녀들을 뚫을 수 없었다.
얼굴도, 노래도 뛰어넘을 수 없어서 그래서 처음 소녀대를 맡았던 매니저에서 다른 매니저가 맡는다. 이 당시 소녀대의 나이가 14살 막 이랬다. 기존의 아이돌 방식을 버리고 소녀대는 외국곡들을 받아서 팝의 성향이 강한 노래를 만들어서 아시아를 겨냥하기로 한다. 그 매니저가 누구냐면, 르세라핌의 사쿠라가 있던 HKT48를 만든 사람이다. 처음에는 AKB48을 만들어서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다. 인기투표는 대통령의 투표보다 더 참여도가 높았다. akb는 아키하바라의 준말이다.
소녀대는 코리아의 원곡을 가사를 바꾸어서 한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인기가 정말 최고였다. 소녀대 어떤 영상 밑의 댓글에 자신의 오빠가 소녀대의 방송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해 두었는데 지우고 그 위에 맥가이버를 녹화했다가 많이 맞아서 소녀대를 아직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웃었다.
코리아는 영어 버전이 있는데 방송에서 영어로 부르기도 했는데, 당시의 금기사항을 깨트리고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다. 소녀대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멤버는 레이코다. 레이코의 얼굴은 현재 아오이 와카나가 이어받은 느낌이다. 그런 류의 얼굴이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코의 얼굴이 장덕을 닮았다.
소녀대의 인기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녀대를 따라서 세또래가 등장해서 역시 인기를 얻었다. 또 대만에서는 비비안 수가 같은 이름인가, 소녀대로 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와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소녀대의 코리아는 박혜령 등 여러 가수가 한국어로 번안해서 불렀다.
태풍 속에서도 이지연, 소녀대 등이 함께한 한일무대~ 1988 https://youtu.be/x96MPBIQaEs
레이코의 아일 비 데어 https://youtu.be/5lsg2aNWS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