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0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9

2장 1일째


49.

 단순히 듣고 싶지 않은 소리라서 목소리가 공명으로 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윙윙거리며 여러 마디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가 싶더니 목소리로 나온 말이 서로 부딪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영화 속 다른 행성의 존재가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더니 최원해가 말하는 소리가 뭉쳐졌다가 작아지는 것이다. 마동은 최원해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늘 안에 허락을 받아낼 기세여서 최원해의 말투에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머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표류자처럼 목적지도 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동은 어쩔 수 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원해는 ‘그래, 역시 여자가 있어야 해’ 하는 눈빛을 띠며 자신의 자리로 슬리퍼를 끌며 돌아갔다. 최원해는 돌아가면서 고개를 돌려 마동에게 미소를 날렸다. 엔드 오브 데이즈에 나오는 악마의 미소 같았다.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만 마동 역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꿈의 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마동에게 주어진 일 중에서 전반적으로 차지한다. 마동은 수석 디자이너이고 뇌파를 채취하는 작업도 도맡아 했다. 꿈이 재탄생하는 리모델링은 그렇게 난해한 일도 아니지만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회사의 업무가 많아지면서 일이 하나, 둘 씩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입사원서를 냈지만 어떠한 자격증도 필요 없고 자격도 뚜렷하지 않아서 입사가 쉬울 것 같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입사하여도 업무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거나 능률이 떨어지면 따로 교육을 받고 석 달 동안 모의 작업을 통해서 투입 여부를 결정지었고, 그것마저도 가망이 없으면 퇴사를 했다. 그것이 입사서류에 명시되어 있는 항목이다. 각 부서에서 할당된 교육을 받지만 특히 뇌파를 채취하는 훈련을 받는 부서는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실전에 투입이 되었다.


 입사가 확정된 이들은 계약서에 그러한 규칙을 문서로 받아서 동의를 했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움직이는 조직에 잘 따르고 있었다. 여기에 남아있는 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인정받은 이후로는 아주 자유롭게 일을 하면 된다. 입사 지원을 원하는 이들은 매년 늘어났지만 신입사원을 다른 회사들보다 채용하는 빈도가 낮았다. 회사는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과 편의성을 최대한 보장을 해 주었고 나이순이나 입사한 순으로 진급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회사에 남아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모두 꽤 일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평등하게 진급의 기회가 주어졌고, 진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디어 공모였다. 아이디어 공모는 매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일을 통해서 오너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문서로 작성하거나 그래픽으로 스케치를 해서 보내면 된다. 오너는 메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을 하고 있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마동을 비롯한 팀장들을 불러 검토를 거쳤다. 점심식사 시간에는 회사에서 마련한 식당에서 호텔 조리장 출신의 요리사가 매일 다른 식단으로 메뉴를 정하여 직원들에게 대접한다.


 회사 내에는 수면 캡슐이 있어서 피곤하면 30분 정도 잠을 자고 나올 수 있었고 수면실에서 한 시간 이상 잠이 들면 자동으로 캡슐은 깨워주는 시스템으로 프로그램되어있었다. 일 년에 큰 휴가는 두 번이 있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휴가는 최고 20일까지 낼 수 있었다. 여직원들은 임신을 하더라도 일할 수 있었고 만삭으로 걷는 것이 힘겹게 되면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면 되었다. 남자 직원들도 부인이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를 3달 정도 낼 수 있었고 월급은 제대로 나왔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조건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그쪽과 첫 계약으로 거액을 거머쥔 직원이 정보를 빼내어 회사를 나간 일이 몇 해 전에 있었다. 그때 오너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자본은 인간을 변이 시키고 인간성을 변질시켰다. 그런 식으로 인재를 빼내간 타사는 대부분 음성적인 꿈 리모델링에 착수했고 그들은 정부의 추적에 발각되어 회사가 매각되거나 영업이 정지되거나, 아예 영업이 취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고객의 뇌파에서 꺼내지 말아야 할 멀쩡한 꿈을 뽑아내어 고객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고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꿈 리모델링 회사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개개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개발한 불법 프로그램이 삽입된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비교적 저지대의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만 그 고객들 대부분이 타인의 말살을 위해서 꿈의 리모델링을 원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