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Sep 22. 2023

9월이 지나가면

9월은 여전히 좀 힘들지

추석이 다가왔다. 다가온다, 로 하고 싶지만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왔다, 로 표기했다. 추석이 다가오는 이 시기가 가장 애매하다. 일 년 중 가장 싫어하는 시기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가장 싫어하는 시기가 붙어 있다. 이런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날이 흐리고 계절의 변화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강한 기시감에 매일 밤 어딘가를 향해 멍하게 시선을 두곤 한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나를 비롯해서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오락가락 오다가 하루 날이 좋았다. 노을을 오랜만에 보았다. 노을은 마치 비 사이를 뚫고 나온 오렌지빛 크림 같았다. 너무나 맑은 오렌지빛이었다. 나를 한참 머물게 만들었다. 3분 정도 노을을 계속 바라보았다. 3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것 같았다. 이 문장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주인공이 16살 소녀를 만났을 때 들었던 감정이다. 애매한 계절에 노을을 만나면 이런 감정이 들곤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얼마 만에 보는 노을인가. 오늘이 지나면 이틀 동안 또 엄청난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진중하고 아름답고 멋진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찰나로 지나가기 때문에 노을이 지는 모습을 진중하게 바라본다. 매직아워의 시간은 계절의 경계에서 더 도드라지지만 찰나로 만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다.


하늘이 침착하게 내려앉는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누군가도 지금쯤 매직 아워의 오렌지 빛 하늘을 보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일광의 흔적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밤의 시작이 마주하면 미라클 오렌지 빛이 대기에 물감을 쏟은 것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정중하게 꺼져가는 태양의 깃털처럼 내려앉은 어둠과 만나 소박하고도 화려한 교향시를 만들어 낸다.


이 시간만큼은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듣자. 이 노래를 부르는 그린데이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빌리 암스트롱 녀석. 그린데이는 그냥 신나게 노래나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은 녀석들을 언제나 악동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 달라는 그린데이의 노래를 이맘때 듣고 있으면 언제나 좀 힘들다. 그린데이가 너무 성숙해져서 힘들고, 이제 나 역시 펑크 록에 미쳐있지 않아서 힘들다.


9월은 늘 8월이 꺼져가는 계절이라 힘들다. 이런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가 독립영화였던 ‘9월이 지나면’이다. 영화는 청춘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잘 말하고 있다. 그 속을 벌리면 알 수 없는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도 보게 된다. 조현철이 기타를 들고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부른다. 그때 눈을 감고 노래를 듣던 지연이 천천히 눈을 뜨며 승조를 바라본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8kLEieEFI

유튜브: 이렇게나 오래 덕질할 생각은 없었는데

제목이 뭐예요?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내 인생의 노래야.  

왜요? 9월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9월은 항상 좀 힘들더라고.

지금도요?

지금은 그냥 그래.


덤덤하다. 그리고 그 덤덤함 속에 덤덤함을 벌리고 다른 감정의 무엇인가가 고개를 들려고 한다. 그게 9월이다. 9월은 그래서 힘들다. 큰 소리로 힘들어! 가 아니라 그냥 좀 그래. 조현철은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들이 나와서 좋다. 특히 안도 다다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작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시간.

사색하는 자들은 운명을 생각하는 시간.

어둠을 향한 긴 호흡을 할 시간.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고독하게 홀로 되려고 준비하고 모두가 시인으로 향해 문을 여는 시간.

낮 동안 잠들어있던 건물들은 이제부터 가장 근사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


이제 곧 어둠 속으로 녹아들겠지. 나는 조깅하러 나왔으니 열심히 땀을 흘릴 것이다. 불청객일 것 같았던 오렌지빛은 어느새 주어가 되지만 이내 자리를 내어준다.


낮과 밤이 주연과 조연을 바꾸는 마법의 시간의 초연함을 자연은 연주한다. 우리는 그대로 그 연주를 마음을 다해 들을 뿐이다.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연은 듣는 이를 위해 연주를 해준다.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설명은 생략한 채.


그린데이의 노래를 들어보자. 빌리 조 암스트롱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만든 노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달라는 그 노래. https://youtu.be/NU9JoFKlaZ0?si=fNBBZhhPnzn1q_4n

Green Day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속에는 두 사람의 연인이 등장한다. 빌리 엘리엇으로 유명한 제이미 벨과 에반 레이첼 우드. 두 사람은 그야말로 풋풋한 청춘이다. 에반 레이텔 우드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아기아기한 모습의 갓 사랑에 눈을 뜬 소녀 같은 모습이다.


잘 알겠지만 이 두 사람은 이후 진짜 연인으로 발전을 하여 결혼까지 한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웨스트 월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그 안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이었다. 영화 카조니어에서 올드 돌리오로 나온다.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돌리오에게 힘을 내! 넌 행복해야 해! 하게 된다. 너무 좋은 영화였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271


그린데이의 노래를 듣자. 9월이 지나가니까. 9월이 되면 힘드니까. 9월이 지나가면 깨워주세요. 빌리 조 암스트롱도 나이가 들었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는 혀 내밀고 악동의 암스트롱이 언제나 존재해 있다.


https://youtu.be/kTdoKP2QIR4?si=GLutuwRD2wZXkHm_

갬성팝


오렌지빛이여 빛나라
9월이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한 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