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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30. 2023

흐린 날이 지속되다가

추석 명절이면 맑아졌다



언젠가부터 추석이 다가오면 이렇게 날이 흐려진다. 날이 흐린 게 뭐 별 건가 싶지만 마치 흐린 날의 반복이 추석 전에 꼭 오는 것 같다. 집 나간 고양이가 때가 되면 오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반갑지 않다는 게 문제다.


추석에 날이 흐리면 기온이 내려간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조깅을 해도 땀이 금방 식는다. 그게 별로고, 밤이 되어 깜깜해지면 날이 흐려도 알 수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흐린 날의 밤은 흐린 밤이다. 컴컴해서 흐린 것이 느껴지지 말아야 하는데 밤하늘과 밤 풍경에도 낮의 그 흐린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서 뭔가 파이팅을 외치며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에 제동이 걸린다. 그래서 별로다.


일교차도 심해서 코 안이 근질근질하며 눈도 간질간질한 것이 마치 봄날에 황사가 적당한 공격을 해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부로 더 이상 찬물로 샤워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찬물을 틀어서 몸에 부었다가 곧바로 입에서 야이 수박 씨봐라. 가 바로 튀어나왔다.


개인적으로 날이 흐리면 비가 오는 날보다는 낫지만 맑은 날보다는 별로다.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별로다. 어젯밤에는 막판으로 달려가는 ‘도시와 그 불 확실한 벽’을 읽고 있었다. 그 시간이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후두두둑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었더니 세상에, 전혀 그런 소식이 없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서 창문이 덜컹덜컹거렸다.


그렇게 20분을 미친 듯이 쏟아졌다. 그리고 흥! 하더니 깜쪽같이 가버리고 말았다. 아침이 되었을 때는 비가 그렇게 왔다는 흔적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어젯밤에 말이에요! 라며 말을 해봐야 거짓말을 하는군. 하고 말 것이다.


이맘때에는 밤에 달이 보인다. 티타늄으로 된 아이폰 15가 나온 시대에 나는 여적 아이폰 8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가 달이 하늘에 보이면 사진을 담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합리화가 가능하다. 내가 못 찍는 것이 아니라 폰이 후져서 그렇다고 해버린다. 그래서 달이 마음에 들게 담기지 못해도 괜찮다. 어쩌다가 사진이 잘 담기면 주위에서 아이폰 8로 담은 거 맞아? 같은 말을 듣는데 우쭐해진다. 그리고, 너 아이폰 14 프로지? 쯧쯧 해버린다.


하지만 마음은 나도 갖고 싶다. 아이폰 15 같은 새로운 폰. 나는 휴대폰비가 한 달에 2만 원이다. 그래서 폰이 망가지면 폰만 바꾸면 된다. 물론 쓰리지라 그렇다. 엄청나게 빠르게 유튜브가 열리진 않지만 답답하지는 않고, 와이파이로 하면 또 대체로 빠릿빠릿하다. 폰은 조깅할 때만 들고 다니며 사용을 하고 대부분은 아이패드로 뭔가를 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지요.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홍콩 영화를 찾아서 보곤 했다. 명절에 찾아서 보는 홍콩 영화라고 해봐야 유쾌한 성룡의 영화로 점철된다. 쾌찬차로 시작해서 용형호제 1, 2로 이어지는 성룡의 영화. 쾌찬차는 지금 봐도 우와 할 정도로 자동화된 시스템의 푸드카가 나온다.  성룡과 원표는 스페인의 한 집에 살면서 아침에 눈 뜨면 운동으로 시작을 하는데 그 장면이 좋았다. 두 사람이 서로 뭄에 힘을 합 하고 한 번 준 다음에 중국풍 무술 연마를 시작으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땀을 있는 대로 흘리고 두 사람의 합이 이뤄진다. 이 장면은 언제나 좋다.


실비아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침투할 때 성룡이 나무 막대를 벽면에 꽂아 가면서 체조하듯이 올라가는 장면도 너무 좋다. 이게 바로 나 성룡이야!라고 말을 하는 액션이었다. 물론 성으로 올라가자마자 빌런들의 야구공에 맞아 디시 성 밑으로 떨어지지만. 쾌찬차에서는 성룡, 원표, 홍금보 삼인방의 호쾌한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 명절이 신나기만 했다.


용형호제 1로 시작해서 용형호제 2의 성룡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쾌찬차와 용형호제 1의 히로인 로라 포너가 있었다면 용형호제 2, 비룡계획에는 재키걸로 정유령, 이케다 쇼코, 에바 코보가 나온다. 이 세 명의 재키걸 역시 호탕하고 유쾌하다. 멤버가 갖추어져 지프를 타고 여행을 가는 장면이 너무나 좋다.


아시아판 인디애나존스 버전으로 재키는 용형호제 2에서 상상하기 힘든 액션을 펼친다. 1편 만한 2편은 없지만 용형호제는 1편을 능가했다. 1편보다 2편이 더 재미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마지막 나치의 기지에서 탈출할 때 재키와 재키 걸 모두 강한 바람에 얼굴이 망가지고 일그러지는 장면 역시 굿이다.


성룡과 원표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명절이 되면 으레 찾아서 보게 된다. 그러나 올해는 안 보게 될 것 같다.


본격적인 흐린 날에는 우울함이 한껏 든다. 그럴 때 트래비스의 Writing To Reach You’를 자주 듣는다. 겨울까지 죽 듣곤 한다. 우울할 땐 우울한 노래를 듣는 게 나는 좋다. 마음속에 큰 돌멩이 하나를 양손으로 쥔 채 길거리를 걷는 느낌을 가지는 게 좋다. https://youtu.be/UeCcuH-EsuM?si=yxTOM8d758btQDpX

Travis

대기에 뿌려진 차가운 흐린 공기 속으로 숨을 참고 조금씩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트래비스 녀석들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묘하다.


흐리지만 저 서쪽 숲 끝에는 해가 빛을 발하며 꺼져가고 있다
고요하고 흐리다 공기가 사람들의 숨을 잡아먹는 것 같은 날의 연속이다
저 구름 사이에 달이 있다 달과 흐린 날은 이상하지만 잘 어울린다
달이 흐린 밤하늘을 벌리고 빛을 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인데 전부 무너지고 아파트 단지가 쏙쏙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추석 연휴가 되었다. 기가 막히게 장막이 걷히고 맑은 날이 이어졌다. 가을을 알리는 맑은 날은 계절이 부딪힌다. 그 여파가 정중하게 나의 몸에도 와서 부딪힌다. 여름 내내 바짝 말라있던 손바닥 발바닥에 땀이 들어선다. 아침에 일어나면 봄날의 알레르기처럼 코 안이 간질간질하다.


추석이 다가오면 이세기 시인의 ‘추석무렵’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는 소리 내어 읽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햇고구마 순을 다듬고

산도라지를 다듬는

손길이 부지런히도 하여라

누구의 입에 서로 나눠먹을 것인가

가을빛 손때 묻은 바쁜 손길에 내려앉은

갱 줍는 고향 모습일레

가슴이 뜨거울레라

가슴이 시방 뜨거울레라


그러고 보면 명절 때 주구장창 전을 구워대던 집들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여기서 ‘주구장창’은 그동안 주구장창 쓰던 말인데 주야장천이 맞는다고 한다. 주야장천은 어릴 때 들어보지도 못한 말인데 주야장천이 맞는 말이다. 표기상으로는 그렇다.


요즘도 티브이에 사람들이 주구장창으로 말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만 어릴 때부터 주야장천보다는 주구장창으로 들은 건 아닌 모양이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도 주구장창이라고 했지 주야장천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는 ‘역전앞’이라는 말과 의미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역전이라는 단어에 ‘앞’이라는 뜻이 있어서 역전앞이라는 말은 역 앞앞이라는 의미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을 했기에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틀린 말, 잘못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말, 틀린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센터가 있다. 경도 지적장애부터 좀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르르 다닐 때에는 봉사하는 사람들 역시 우르르 긴장을 하며 안내를 한다. 그들을 보고 어디가 아프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말하는 것이 잘못된 말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이상하고 그렇지는 않다. 나는 매일 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주야장천을 주구장창이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표기상으로 틀렸지만 잘못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주구장창(까지는 아니지만) 밥을 안칠 때 그 위에 식빵을 같이 올려서 찌곤 했다. 그래서 갓 꺼낸 식빵에는 밥 냄새가 절묘하게 퐁퐁 났고 설탕을 뿌려서 먹으면 아주 맛있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엄마는 자주 그렇게 식빵을 밥을 안칠 때 쪄 주곤 했다.


흐렸다가 날이 맑아지니 그 밥 위에서 쪄 낸 식빵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해서 추억의 그 맛을 찾아서 식빵을 쪄 먹을 생각은 없다. 귀찮고, 손을 뻗으면 집구석에 먹을 것들이 많아서 생각만으로 끝낸다. 생각으로 끝내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생각 속에서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

추석명절에는 언제나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시에서 강 하류에 낚시를 하게끔 낚시터를 마련해 놨다. 저기 다리를 지나면 바다가 나온다. 그 바다에서 자동차를 실어서 해외로 나간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라 물고기들이 많이 있다.


코로나 전 몇 년 동안에는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낚시를 많이 하러 나왔는데 음식도 마구 해 먹고 해서 아주 더러웠다. 그러다가 중국인들이 대거 점령하더니 이제는 그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한국 사람들만 이렇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전부 깨끗하지는 않다. 대부분 낚시만 하지만 나이가 든 어르신들은 이상하게도 낚시를 하면서 술판을 벌이고 담배를 피우고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언제나 1과 2 사이에서 잠깐 고민을 한다. 왜 그러냐고 한 소리를 할까 싶은데 그냥 휙 달려 지나간다. 그런 경우가 꽤 여럿 있다. 어두워지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는 옆에 따로 있는데 이렇게 조깅하거나 걷는 도로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 맞은편에서 오면서 굉장히 밝은 시퍼런 불빛을 상향으로 해 놓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 눈이 부시면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전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발로 차버리고 싶다. 그런 놈들이 자전거를 타는 전체를 욕먹게 한다.

날이 맑아졌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집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고 읽고 싶은 소설을 읽자. 요즘은 잭 리처 시리즈 ‘사라진 내일’을 읽고 있다. 하루키의 신작보다 두껍지만 속도감은 빠르다. 위에서 우울한 노래를 선곡했으니 이번에는 영화 밀수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를 듣자.


밀수의 여러 재미 중 하나는 짜증 연기의 대가 박정민의 짜증을 보는 것이고(상어 앞에서도 그 짜증이 ㅋㅋㅋ),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밀수를 장식했던 밀수즈들이 나올 때마다 흘렀던 음악이다. 밀수의 ost는 이경영처럼 하나의 장르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70년대의 그 멋진 한국가요들이 잔상이 되어 내내 따라다녔다. 나미와 머슴아들의 행복이 흘러나올 때에도 멋지고, 나이트에서 이은하(닮은)가 나와서 밤차를 부를 때에도 좋았다. 게 중에서 제일은 김트리오의 연안부두가 아니겠는가.


https://youtu.be/76I7aNmBCFQ?si=uP4tRNlRS100cW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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