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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64

3장 당일


64.

 야. 외. 섹. 스. 는. 우. 리. 조. 상. 들. 도. 즐. 기. 는. 편. 이. 었. 으. 며. 예. 부. 터. 건. 강. 한. 정. 사. 로. 불. 렸. 다. 고. 한. 다.


 책에서 본 문구와 활자들이 마구 마동의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마동의 머리와 온몸의 세포는 가슴골이 깊은, 미쳐 보이기까지 한 신비한 여자와 야외에서 하는 섹스를 그리며 흥분을 지속시키고 있었다. 마동은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페니스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았다. 트레이닝복 앞섶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의 정론처럼 이어지는 귀결이 아니라 변증적으로 행해지는 모순이 가득했다.


 나는 어째서 그런 생각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마동은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지만 이미 해버린 생각을 지우개로 지운다거나 없애지는 못했다.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의 물방울들이 뇌의 표피에 가득 붙어 촉촉하게 만들었다. 흥분되는 기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비가 떨어져서 탁탁 튀었지만 달은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이 지니고 있는 냉철한 달빛을 마동은 쳐다보았다. 오늘 밤에는 달이 청아하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마동은 대나무공원의 벤치에서 여자가 오고 있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떨어져 벤치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벤치의 끝을 잡고 팔 굽혀 펴기를 15회씩 두 파트 했고 천천히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것을 다시 세 번 반복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녀가 걸어와야 했지만 긴팔에 긴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머리의 한편에서는 어서 조깅코스를 달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여자를 기다리고픈 마음이 마동을 그 자리에 계속 잡아 두었다. 늘 마음과 머리가 부딪힌다. 여자에게 다가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 보는 신비하고 이상한 여자를 생각할수록 마음속에 흐리고 엷은 비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지금 내가 뭐하는 것일까. 모르는 여자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영화에서는 일어나는 일을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마동은 계속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에 붙은 빗방울이 허공으로 춤을 추며 떨어져 나갔다. 비는 소나기에서 강도가 줄어들어 흩날렸다. 치누크가 불어와 흩날리는 빗줄기를 지그재그로 세상에 뿌렸다. 사선으로 떨어진 비가 마동의 어깨와 콧등을 적셨다. 한 여름에 떨어지는 비는 더 이상 시원하지 않았지만 땀을 흘리고 맞은 비는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마동은 손등으로 콧등의 비를 닦은 후 조깅코스의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마동의 페니스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트레이닝 하복의 앞섶이 봉긋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개불이 딱딱하게 냉동이 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동은 약간 빠르게 걸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가슴골이 매력적인, 긴팔에 긴치마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서 200미터를 왔지만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스쳐 지나치기도 했는데 이제 돌아가 버린 것일까.


 마동은 혼란스러웠다. 기이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바람부터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여자까지.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 낸 현실의 모순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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