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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65

3장 당일


65.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긴팔의 긴치마를 입은 여자와 스치는 야릇한 접촉이 있었고 시각적으로 들어온 정보가 정확하고 생생했다. 마동은 자신이 받아들여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뇌파를 끄집어내 보고 싶었다. 이것이 진정 마동이 꿈꾸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실제로 마동이 눈으로 본모습인지 지금은 판단을 미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 정신과 상담도 받아야 하고 끝내지 못한 회사의 작업도 있었다. 마동은 지금 평범한 조깅코스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는 현상에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심각하게 느꼈다.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정신을 다듬고 다시 달리기 위해서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이 끝나자마자 마동은 다시 앞으로 달렸다. 페니스는 달리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니 반비례적으로 크기가 줄어들었다. 달리는 행위가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주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면 심장은 페니스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발기를 멈추는 것에 운동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대나무 숲을 옆으로 훅하고 지나쳐서 앞으로 달려 나아갔다.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완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인간도 천천히 걷는 사람의 모습도, 인간의 형태를 띤 어떠한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길고양이의 모습도 오늘따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깅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비는 더 이상의 비이기를 포기한 듯 가는 실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흩날리는 비가 걷는 사람들을 더 많이 젖게 만든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57번’을 틀었다. 소나타 23번의 출발을 알리는 연주가 시작되고 베토벤의 피아노 단조가 이어진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연주곡이다. 이 곡을 연주하려는 피아노 전공자들마저 어려워한다. 요구되는 손가락의 기교가 목적을 부여받은 인간이 목적을 향해 달려가듯 고도의 기술을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 곡은 무엇보다 건반이 아주 무겁게 느껴지는 곡이다. 곡이 가져다주는 느낌이 묵직하여 연주자들은 연습하기에도 많이 힘들어했다. 중반부로 갈수록 불에 타오르는 듯 뿜어 나는 에너지가 느껴져서 연주자들은 이곡의 마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베토벤은 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지만 자신이 하는 음악이 권력이나 귀족 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귀족과의 마찰이 있으면 곧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귀족과 트러블이 심해지면 책을 집어던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귀족에게 음악을 팔아치우기도 했으니 어쩌면 돌 같았던 베토벤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노력파였다. 하루는 비가 오고 난 후 일층의 천장으로 물이 계속 떨어졌다. 일층에 살고 있던 주인이 화가 나서 이층의 베토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더니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에 통증이 오면 담아놓은 빗물에 손을 넣어 통증을 식혀가면서 노력을 하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마동은 베토벤의 곡을 대학교 때 동거를 했던 연상의 여자 덕분에 알게 되었다. 반년 정도 같이 살았다. 1학년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부터 겨울까지 같이 보냈다. 자취를 할 때 마동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연상의 걸프렌드와 함께 살림을 합쳤고 덕분에 서로 방값을 줄일 수 있었다. 그때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그녀 덕분에 베토벤의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소나타 23번 이 곡을 유난히 많이 들었고 빠져들게 되었다. 연상의 걸프렌드는 당시 음악가들의 생활과 생각들도 마동에게 많이 들려주었다. 마동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들었다.


 마동은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을 하니 페니스는 완전히 쭈그러들어서 팬티의 가장자리 어느 부분에 힘없이 푹 꼬꾸라져 버렸다.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켜 달리는 것에 세포들이 반응함에도 불구하고 페니스만이 운동신경에 반응하지 않고 힘이 빠져 그저 몸에 붙어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육체라는 것 역시 참 알다가도 모를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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