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5

99

by 교관


99.


그녀의 이름은 박는개.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묘한 슬픈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 역시 회사 내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축에 속했다. 그녀가 마동에게 자양강장제를 하나 권했다. 마동은 박는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가까이 오니 비누 향을 뚫고 그녀 자체의 향이 느껴졌다. 매끄러운 피부 냄새, 허벅지 안쪽의 냄새, 귀불의 냄새 그리고 성기를 덮고 있는, 수북하지는 않지만 거친 터럭의 냄새가 마동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1미터 안으로 들어오니 그녀에게 나던 향수냄새를 밀어내고 그녀의 체취만 마동의 후각에 강한 타격을 주었다.


마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공적인 냄새를 걷어낸, 인간이 풍기는 본연의 냄새를 마동은 맡은 것이다. 마동은 그녀에게 자양강장제 한 병을 건네받으면서 그녀의 와이셔츠사이로 보이는 가슴골에 시선이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컴퓨터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몸이 안 좋아 보여요.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병원으로 가실 거면 제가 같이 갈까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의외였다. 박는개는 사무실의 남자들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많은 남성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타입의 여자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를 감도는 묘한 슬픈 기류와 냉정한 모습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포기를 했다. 그녀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고 마동이 그녀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그녀에게 다가가 봐야, 하는 생각이 강했고 마동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걸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괜찮아. 프레젠테이션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모두들 꽤 바쁘잖아.”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된소리가 났다.


“병원도 회사 근처야. 조금만 걸으면 돼.” 마동은 억지스럽게 웃어 보였다.


당신은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겠어요.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요.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말이에요.” 미소를 띠었다. 기분 좋은 미소다.


“자양강장제 한 병에 각설탕 12개 정도가 들어있다는 거 알죠? 마시면 각설탕 12개를 씹어 먹는 것과 같으니까 다운된 기분이 조금은 올라갈 수 있어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는개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갔다. 그녀가 멀어질수록 아찔했던 그녀의 체취도 점점 멀어지고 그녀의 곁을 감돌던 비누 향과 향수 냄새가 마동의 자리에서 그녀를 대신했다. 남아있는 향수냄새가 바늘이 되어 마동의 머리를 더욱 찔렀다.


시간이 되어서 클라이언트가 도착했다. 마동은 프레젠테이션 룸에서 가물가물한 정신 상태였지만 나무랄 데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꿈의 세분화, 각 레이어별로 디자인할 목록을 나열해서 분리했고 그 꿈에 가중될 집합인자의 세밀한 부분은 디자이너들이 추후작업 후 결과 보고가 있을 것이다. 마동의 몸에 밴 작업능력 탓에 프레젠테이션은 착착 진행되었다. 몸에 몸살기운으로 무리가 왔지만 클라이언트는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은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옆에서 진행을 맡은 마동에게 시선을 두지는 않았다. 프레젠테이션은 하루 만에 나온 기획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마동은 자신의 데스크에서 디자이너들에게 내려야 할 오더에 대해서도 이미 정리를 다 해 두었다.


처음 입사해서 마동은 한 달 정도는 난감하고 공허한 마음의 상태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때는 늘 훈련에만 몰입을 할 때였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리모델링해서 리세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투성이였고 혼란스러웠다. 뇌파채취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하면서도 마음의 빈 공간은 매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동의 능력을 알아본 오너에게 업무를 배워나가며 혼란스러움이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꿈에 다가 갈수록 마동의 혼란스러움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동의 첫 공식적인 작업 이후에 오너와 함께 회사에서 뼈를 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마동은 오로지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을 제대로 채취해서 리모델링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의 꿈은 ‘떠돎’이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떠돎’이었고 ‘떠돎’은 각자의 형태로 변이 했다. 날카롭게 변한 것도 있고 배반이라는 것 때문에 ‘리벤지’라는 무서움으로 변한 것도 있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꿈에 대한 갈구와 그리움이 강했고 그 꿈을 마음 깊숙이 최선을 다해 리모델링을 하면 클라이언트에게는 감동으로 다가갔다. 꿈의 디자인 작업이라는 것이 자격을 갖추고 업무를 배운다고 해서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요컨대 최원해 부장도 마동이 거쳐 온 이 모든 훈련을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원해 부장은 전혀 업무의 일선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작업 과정에서 배재되어 있었고 그런 최원해와 비슷한 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업무가 있고 회사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과 필요할 사람을 지니려는 성향이 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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