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5

101

by 교관


101.


요즘 병원에는 포르말린냄새 따위는 나지 않는다. 동네에 하나둘씩 있는 한의원도 가정집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이다. 포르말린냄새는 오래전 욕실에서나 볼 법한 타일이 치료실을 뒤덮은 병원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이제는 좀비무비 속에서나 나는 냄새일 뿐이다. 마동은 어린 시절에 간간이 갔던 네모난 성냥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가 좋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병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풍기는 포르말린냄새는 마음의 한 곳을 안정시켜 주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어린 시절 마동에게 그 냄새는 시체에서 피어나는 꽃의 냄새라고 말해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마동은 더더욱 포르말린냄새를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동이 살았던 경진의 읍내에는 작은 병원이 하나 있었다. 작은 병원에는 내과병동과 소아병동이 같이 붙어있었으며 병원은 깨끗했지만 구석구석 지저분한 쓰레기통과 그 속에 버려진 주사기들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병원이었다. 한쪽의 쓰레기통에는 주삿바늘이 과자처럼 쌓여있었고 또 한쪽의 쓰레기통에는 주사기통이 장난감더미처럼 깔려 있었다. 병원은 처음 보면 성냥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인데 또 가까이 가서 보면 달랐다. 제대로 설명하고픈 말은 항상 이렇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다. 아주 작았던 마동은 병원의 복도를 걸으면서 코를 약간 쳐들고 킁킁 거리며 온 세상의 병원냄새를 전부 흡수해 버릴 것처럼 그 냄새에 집중하곤 했다.


시체가 피워내는 꽃의 냄새.

어렸던 나는 누구와 병원에 발을 들여놨을까.


오래전 병원에는 티브이가 없었다. 간호사는 간호모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 마동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린 마동을 데리고 병원에 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어째서 그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는 기억에 남을까. 후각은 인간의 기억을 가장 정확하고 오랫동안 유지시켜 준다. 마동의 기억에 남아있는 오래된 병원의 포르말린냄새는 무엇일까. 마동은 기억의 자락을 따라가 보지만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이 어떤 병원인지 낯설고 뿌옇기만 했다. 그 광경은 밤에 잠이 들면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역시 희뿌옜다.


명절이 되어 집으로 가서 마동은 어머니에게 꿈에 보이는 병원을 물어봤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도대체 기억은 어떤 식으로 생겨먹은 것인가. 고등학교 때 마동이 병원에 입원을 한 뒤로 어머니는 무엇의 영향인지 보통의 모습에서 벗어나기(벽 너머의 다른 세계를 늘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했으며 이후 마동이 꾸는 꿈에 대한 질문에도 어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명절마다 집으로 가면 어머니에게 마동이 꾼 꿈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줄기차게 어머니에게 마동이 꾸는 꿈에 대해서 질문을 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입으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포르말린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병원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사라진 후 마동은 자신의 기억 속의 냄새도 점점 잊어가게 되었다. 그때가 언제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마동이 달리기 시작하는 무렵과 맞아떨어졌다.


병원 대기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인기 있는 내과병원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 시간을 내어서 매일매일 병원에 들른다는 것에 마동은 놀랄 따름이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얼굴을 하고 각각의 생각을 지닌 채 한 곳에 몰려와있었다.


지금 마동이 들어와 앉아있는 병원의 대기실은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쾌적하고 깨끗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마동에게는 위화감을 자아내게 했다. 대기실에는 각종 잡지책(주부들을 위한 여성잡지책, 패션화보와 십 대를 위한 쎄시, 자동차 전문 잡지책, 남성의 헬스에 관한 잡지 등)과 신간소설과 유명인의 에세이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작은 서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너편 파티션 벽에는 50인치 티브이가 달려 있고 뉴스와 생활정보가 나오고 있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병원실내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사오 사사키의 ‘산들바람’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한 여름의 실내에 나오고 있었지만 어딘가 어수선하기만 했다. 음악과 티브이와 잡지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전부 따로 놀고 있었다. 그 누구도 티브이를 보는 사람은 없었고 피아노곡을 듣는 이들도 없었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선율은 병원내부의 대기실을 훑으며 떠돌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딱한 신세가 되었다. 모두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의 화면을 터치할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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