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제트 같은 그녀
겨울에 날이 흐리고 그렇게 춥지 않으며 따뜻한 난로 앞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있으면 기시감이 확 든다. 기시감보다 어쩌면 기억이 가까울 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이런 겨울날에 지금처럼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에 가는 건 정말 일탈이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 한 시간 일찍 극장에 들어갔다. 중앙극장은 2층에 있었는데 들어가면 로비가 좋았다. 로비도 극장의 의자가 일렬로 몇 줄이나 있었고 앞에 대형 브라운관이 있었다. 거기에는 철 지난 영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영화가 본 상영관의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다.
로비의 한편에는 매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같은 사이다 지만 극장 로비에서 마시는 사이다는 더 맛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극장은 시내에 몰려 있었다. 다섯 군데의 극장이 전부 몰려 있어서 극장마다 고객유치에 나름대로의 방안을 모색해서 영화를 보로 들어가기 전까지도 재미가 좋았다. 이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흥행하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다.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오분 거리에는 동시상영을 하는 작은 극장이 세 군데나 있었다.
동시상영 극장에는 액션영화와 성인영화가 했다. 동시상영 극장은 사람이 늘 없고 매점이 없는 극장도 있었다. 그래도 동시상영 극장을 찾는 사람은 늘 있었고 꾸준하게 상영작을 번갈아가며 영화를 상영했다.
중앙극장은 이층 로비에서 창문으로 시내중심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녁 황금시간대에는 떠 밀려서 가야 할 정도였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고 우리는 매점에서 사이다와 과자를 먹으며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면 꼭 아는 놈들이 지나갔다. 야호 이놈들아,라고 부르면 본인이 아님에도 꼭 고개를 꺾어서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니네 어디 가는데?]라고 물으면 [우리 그냥 돌아다니지]라고 하며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요즘 조깅을 하는 강변의 조깅코스에 내가 학창 시절에는 밤이면 포장마차가 죽 들어섰다. 그리고 강변의 구석진 곳으로 가면 노는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강변에는 밤이 되면 아이들이 모여서 빙 둘러앉아서 생일빵을 한다고 술을 마시고 강에 빠트리기도 했다. 강변을 계속 돌아다니면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이 녀석이 우리 학교에서 킹카였다)와 수업을 째고 강변을 거닐었다.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네 저 앞에 여자애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으면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이다.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쪽으로 갔다. 거기에 가니 좀 무서운 여자애들 10명 정도가 중간에 다른 여고생 두 명을 두고 작업을 벌이려고 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데 친구는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대충 돈을 빼앗으려고 하고 여고생 두 명은 버티고, 그러다가 폭행을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기억에 분명 노는 아이들 10명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커터 칼까지 꺼냈다. 두 명이 다른 학교 여고생이라는 건 10명도 전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 명의 여고생과 다른 교복이었다. 겁나는 이 분위기를 친구는 어떻게 해결했냐면, 잘생긴 자신의 얼굴로 주말에 5대 5로 미팅을 하자는 분위기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두 명의 다른 학교 여고생들은 보내주기로 했다. 가장 대장을 보이는(커터 칼을 빼 든) 여고생이 친구 녀석의 얼굴에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주말에 우리는 5대 5로 미팅을 했다.
교복을 벗은 여자아이들은 한 눈에도 우리 노는 아이들, 내놓은 아이들이니까 건들지 마. 가 역력한 복장이었다. 화장에 머리에는 1인당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썼을 법했다. 우리는 교복을 벗으니 순둥순둥한 복장이었다. 겁을 잔뜩 먹고 미팅을 했는데, 여자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진하고 순수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뭔가 잘 몰라서 수줍어하는 모습이 묘하지만 매력적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아지트는 없고 우리가 자주 가는 아지트 같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 중에 조안 제트 같은 얼굴과 화장을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그 애는 조안 제트를 알지는 못했다.
조안 제트는 런어웨이즈 멤버고 남자들에게 밀려 집안 청소나 하던 70년 대 중반에 기타 들고 세상을 놀라게 한 로커라고 알려 주었다. 2010년 영화로도 있는 런어웨이즈에서 조안 제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았다. 런어웨이즈 밴드는 세상에 전부를 던져 버릴 열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안 제트를 닮은 그 애는 런어웨이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나의 파트너가 되어 음악감상실에 데리고 갔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때는 영화가 나오기 전이니까 음악감상실에서 런어웨이즈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자이어야만 했던 70년대, 이 억압과 답답함이 가득한 세상에 돌멩이를 던지듯 뛰쳐나온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 이 미친 누님들이 만든 밴드 ‘더 런어웨이즈’의 이야기다.
로큰롤을 하고 싶은 조안 제트. 기타를 배우러 가지만 여자는 전기기타는 치면 안 된다는 말만 듣는다. 찌발 딥퍼플의 연주를 하고 싶었던 조안 제트.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 체리 커리는 학교 무대에서 데이빗 보위처럼 노래를 부르다 학생들의 야유를 받는다. 여자는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찌발 이 답답함을 전부 던져 버리고 싶다!
그러다가 약과 술과 자유가 가득한 클럽에서 둘은 역사적 만남을 가진다. 이 만남이 이루어진 건 미친 프로듀서 - 조드 장군 역의 마이클 섀넌의 킴 파울리 때문이었다. 킴 파울리가 체리 커리의 거친 면을 보게 된다.
너, 조안 제트와 밴드 한 번 해볼래? 런어웨이즈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그 당시 체리 커리의 나이 15살. 킴 포리는 섹시한 미성년자! 대박을 칠 거야!
이렇게 해서 여성으로 이루어진 미친 록 밴드가 최초로 탄생이 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정말 조안 제트 같고, 다코다 패닝은 얼굴까지 체러 커리와 흡사하다.
런어웨이즈의 명곡 [체리 밤]이 탄생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흥미롭다.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건 우리 음악이지 허벅지가 아니잖아!
런어웨이즈는 음반사와 계약 후 엄청난 밴드가 되고 인기를 얻는다. 보이 밴드를 능가하는 여성 최초 밴드. 신문과 잡지의 1면을 장식하고 그녀들은 최고였다.
멤버에는 또 한 명의 엄청난 누님 리타 포드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체리 커리의 자서전에서 시작했고 조안 제트가 영화에 참여해서 만들어졌다. 3년간 짧은 활동의 이야기를 다룬 최초 여성밴드 런어웨이즈였다.
https://youtu.be/VeAWwxDUHoo?si=SKviQbHoF0fdErJL
이 멋진 영상이 이렇게 깨끗하다. 마치 얼마 전에 촬영을 한 것 같다. 체리 커리가 이렇게 멋지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약 때문이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면 체리 밤으로 온 세상의 소녀들, 그리고 사람들을 후려갈겼다. 런어웨이즈를 보고 한국에서도 당시에 여성밴드가 나타났다고 했다. 70년대인데 어떤 밴드일까.
https://youtu.be/_EBvXpjudf8?si=QVUax3eaeX0yT0jI
런어웨이즈의 미모와 보컬을 담당하던 체리 커리가 약물에 쩔어 힘들다며 나가고 난 후 조안 제트는 도망가는 멘탈을 부여잡는다. 체리 커리는 영영 무대를 떠나지만 조안 제트 이 누님은 좌절하지 않고 더 강력한 로큰롤을 한다.
https://youtu.be/t5ecqUhec-s?si=r-bLCFt34p-WONJt
시커먼 이 누님의 색을 살려 블랙하츠를 만들어 하나의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노래로 조안 제트는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 지구인이라면 다 들어봤을 그 쩌는 노래 아이 러브 락 엔 롤이 세상을 강타해 버린 것이다 와우.
https://youtu.be/kIt3OGra3Lo?si=qrMkWo9qr0vpVpiJ
리타 포드 이 누님을 수식하는 말이 메탈계의 여자 괴물 내지는 거물 뭐 이렇게 불린다. 런어웨이즈의 멤버로 영화를 보면 미모와 보컬을 맡은 체리 커리에게 날을 세워 덤벼들었던 누님이다.
영화에는 존재감이 너무 없이 나왔지만 리타 포드는 조안 제트보다 기타를 잘 쳤다. 이 누님이 오지 오스본과 사귄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는데 둘이 같이 부른 노래 역시 대박이었다.
홀로 떨어져 나와서는 미모가 빛을 발하게 되지만 런어웨이즈에서 있을 때에는 가장 덩치가 컸다고 해야 할까. 이 누님이 기타를 들고 공연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코로나에 5개 공연이 전부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고 작년에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나이에도 12줄짜리 기타를 들고 화려하게 퍼포머를 하며 공연을 했다. 붉은 가죽바지와 조끼를 입고 정말 멋졌다구.
https://youtu.be/aN2LehZ_KdQ?si=ZUTchiPmEYccYD7E
이때가 체리 커리가 나가고 보컬이 붕 떠 있던 때 조안 제트와 리타 포드 두 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리타 포드는 아직 살이 오른 소녀 같은 모습이지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와일드하다. 이 누님들이 애초에 와일드했다. 와일드한 로큰롤이 하고 싶었으니까. 체리 커리가 나가고 조안 제트가 노래를 부르는데 음색이 좋다. 이때가 아직 77년이다. 역시 우왕 굿이었다요.
그 애에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그 애의 얼굴은 저렇게 조안 제트 같은 모습이라 사진으로 많이 담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출품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다 떨어졌지만. 여기에 그 사진을 올려도 될까. 지금은 학부형이 되어 있겠지.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이리로 빠진 걸까. 이건 영화 이야기일까, 음악 이야기일까, 그저 일상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