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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3. 2024

짜글이의 냄새와

봄날의 방향제 냄새


어제는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데 방향제 냄새가 골목에서 확 났다. 봄의 향이다. 봄 냄새. 봄 냄새는 봄이 되면 난다. 벚꽃처럼 아주 찰나로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곳에 퍼졌다가 사라진다. 봄은 생과 사가 붙어 있는 아주 기묘한 계절이다. 죽음의 계절로 다가오는 계절이 나에게는 봄이다. 봄은 사람을 들뜨게 하기보다 가을보다 더 가라앉게 만든다.


봄에는 봄의 향기가 있다. 목련에서 나는 향 같은 냄새가 있다. 방향제 냄새가 난다는 건 봄이 왔다는 말이다. 보통은 3월에 골목에 방향제 냄새가 났는데 올해는 2월부터 봄의 향을 맡았다. 이런 방향제 냄새는 꽃에서 나는 향인데 자연적인 냄새다. 대부분 좋은 냄새는 인공적인 냄새인데 이렇게 자연에서 나는 냄새 중에 좋은 건 꽃에서 풍기는 향 정도다.


대기 중에 방향제 냄새가 나는 곳은 골목뿐이다. 아파트 단지나 도로, 거리에서는 거의 나지 않는다. 가을이 짙어지면 도로에서 밤꽃냄새가 나지만 봄을 알리는 방향제 냄새는 골목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계절을 감지하고 꽃을 피워 향을 뿜어낸다. 봄의 향기에는 파스텔컬러가 보인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색감의 향이다. 그리하여 봄은 죽음의 계절이다. 만개와 동시에 무화되어 사라지는 모든 봄꽃은 찬란하지만 슬프다.  벚꽃은 팝콘처럼 부풀어 올라 가장 아름다울 때 전부 떨어지고 만다.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골목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방향제 냄새가 난다. 봄의 향을 맡으며 조깅을 한다. 그럴수록 기시감이 든다. 언제나 이럴 때는 기시감이, 강한 기시감이 든다. 도대체 이런 기시감은 왜 드는 것일까. 몸에 힘이 쑤욱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기억의 사고를 허물어트리는 이 기괴한 기분은 어째서 들까. 기시감은 강아지도 느낄까. 강아지가 기시감을 느낀다면 어떻게 표현을 할까. 고개를 180도로 돌릴까. 앞발을 얼굴에 대고 마구 비빌까.


눈을 감았다가 뜨면 기시감이 드는 그곳에서 눈을 뜰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짙은 기시감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달려서 돌아오자.


집으로 와서 냉장고에 남은 돼지고기르 짜글이를 만들었다. 붉은색 중에 음식의 붉은색만큼 매혹적인 건 없다. 저 붉은색을 먹으면 몸의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짜글이의 붉은색은 마법의 색이다. 끓어오를수록 맛있는 향이 난다. 인공적인 냄새다. 기가 막힌 냄새인 것이다. 사람의 위를 쥐어짜는 냄새, 봄이라 더 맛있는 색으로 느껴지는 냄새. 짜글이의 붉은색은 마법의 색이다. 끓어오를수록 맛있는 향이 난다.


붉은 향이 매혹적일수록 짜글이는 더욱 맛이 좋다. 고기는 그렇게 좋은 부위를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글지글 짜글이가 봄날에 익어간다. 곧 본격적인 봄이다. 방향제 냄새가 짜글이의 붉은 향으로 바뀌는 마술이 펼쳐진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목련 꽃의 향을 맡고 짜글이의 맛있는 냄새를 맡고, 봄을 안고 있는 그 사람의 냄새를 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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