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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7. 2024

고전 영화 두 편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13번가

택시 드라이버

공허다. 지독한 공허. 트래비스는 전쟁 참전 후 공허가 몸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허무를 채우고 불면을 쌓아 놓는다. 이 공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깊어져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한다.


영화는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걸 보여주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불면으로 트래비스가 점점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트래비스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깊고 큰 공허는 저기 보이는 밤의 쓰레기 인간들도 있을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들까.


공허는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용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망상을, 객기를 그리고 광기와 정의를 불러온다.


공허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상실과 결락이 동시에 비가 되어 택시 차창에 부딪힌다. 그럴 때 흐르는 재즈만이 트래비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허가 불러온 사회에 대한 울분은 아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집중된다. 트래비스는 이제 공허가 전해주는 이 광기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게 느껴진다. 아이리스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가온 베시를 무시하는 트래비스를 보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소외된 자들을 떠올렸다. 76년작이고 트래비스는 영화 속에서 26살이다.


열패와 낙오 그리고 외로움과 세상 그 너머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트래비스가 이해된다면 내 처지가 트래비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https://youtu.be/T5IligQP7Fo?si=_fFdcZZuiFuv9Z90

Sony Pictures Entertainment




분노의 13번가


모든 감독이 그렇듯이 존 카펜터 역시 초기 작품은 수작이다. 어쩜 이렇게 표현을 잘했을까 싶다.


경찰서로 달려드는 갱단들은 그야말로 오직 신념 하나만 있는 좀비 떼처럼 보인다. 창문을 넘고, 벽을 뚫고, 방해물을 지나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좀비 떼 같은 이 모습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오마주를 한 것 같다.


갱단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 없는 것도,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모습도 좀비와 흡사하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 좀비로 변한 가족에게 향한 마음이다.


영화 초반에 한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잘 못 샀다며 다시 가는데 거기서 갱단을 만나는데 바로 아이에게 총을 쏴 버린다. 갱단은 좀비처럼 아이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죽여 버린다. 존 카펜터 감독이 그냥 가감 없이 연출을 해 버렸는데 그래서 갱단의 존재가 더욱 좀비처럼 보였다.


고전 서부극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존 카펜터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갱단들은 대사도 없고 무표정으로 몰려다니며 경찰서에 닫힌 사람들을 죽이려 든다. 경찰서 건물의 모든 전화선을 끊어 놓고, 이사 문제로 전기는 새벽에 끊어지기로 되어 있는 엉망진창인 상황.


자본을 들이지 않고 이토록 기가 막히도록 잘 뽑아낸 연출이 있을까 싶다.


https://youtu.be/7wnAjYDVObs?si=zSQgLQhfHk-Fhk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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