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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9. 2024

울산의 별

희망은 멀리 있지 않아


와인의 맛은 잘 모르지만 이 영화는 묵직하고 진한, 쌉싸름하고 짙은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다. 인상이 써지는데 끝 맛이 뭔지 모르게 괜찮네,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다. 이야기는 내내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그게 인생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이 현실감 쩌는 이야기.

내가 사는 도시의 이야기다.

내가 생활하는 동네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서민의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내야 하는 이야기.

그러나 힘든 이야기.


울산의 중추적인 별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던 때가 있었다. 그 찬란한 울산의 별이 지면서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되었다. 부흥기를 거쳐 누구나 주머니가 두둑할 때를 거쳐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중추적인 별이 휘청이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하청 회사들은 전부 문을 닫게 된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마찰을 겪고,

그러나 헌 별이 지면 새 별이 떠오른다.


윤화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하려고 주소 적을 때 동구 전화동이라고 적는데 처음에는 오류인 줄 알았다. 그 오류를 편집에서 걸러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동구에 전화동은 없다. 전하동이다. 그런데 윤화는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후반에 벽보에 윤화가 쓴 글을 보면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하동을 전화동이라고 적은 부분은 아주 디테일한 장면이었다.


영화는 울산 방어진 전하동과 조선소가 배경이다. 실지로 전하동에는 개발이 되어 전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지 오래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는 꼬질꼬질한 가정집과 마을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잘 도 찾아냈다.


윤화가 조선소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포스터처럼 등대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데 슬도의 등대 같다. 실제로 조선소 내에서 슬도 등대까지는 먼 거리다. 회사에서 걸어 나와 슬도 등대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는 무리다. 현재 슬도의 등대는 관광지 비슷하게 되어서 사람들이 늘 많다.


윤화의 딸과 연예인 지망생 친구가 서울로 가기 위해 공업탑에서 버스를 타려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소가 있는 방어진에서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공업탑과 방어진 사이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굳이 끝과 끝의 공업탑까지 간 것을 보면 울산의 상징 같은 공업탑 로터리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문 옆에 청명길이라고 붙어있는데 전하동에 청명길은 없다. 영화를 위해 만든 것 같고, 영화 속 조선소와 작업복 역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울산의 현대 중공업 조선소의 작업복은 전혀 저렇지 않은데 아마 현대 중공업을 직접적으로 영화에 나오게 하는 것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영화는 윤화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남편 대신 조선소에서 배에 매달려 때를 벗기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아들과 딸은 그렇게 하루하루 돈을 버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벌어서 언제 이런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까. 못 배우고 똑똑하지도 않고 욕만 할 줄 알지만 윤화는 안다.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지내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를 지탱한다고,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울산의 조선소를 만들었고 울산의 별이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었다는 걸.


https://youtu.be/HifmC-jKQCc?si=ZrCc3TUyu_C3Zmu_

영화의온도


여기가 방어진 전하동

저기 바다가 보이는 전하동은 대체로 아파트 단지가 많고 사이사이에 전통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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