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17

by 교관


217.



마동은 숨이 차올라 크게 쉬어야 했다. 정신은 누군가 뒤로 돌아와서 스위치를 내린 다음 가져갔다가 와트수가 다른 전구를 꽂아서 스위치를 올려 버린 것 같았다. 제어가 불가능한 두려움이 마동의 몸을 엄습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장이 크게 뛰었고 맥박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고 소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디렉트메시지: 소원이라곤 별거 없어. 여기서는 모두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난 마당이 있는 큰 집에 살고 싶어. 그리고 정원에 한국산 소나무를 심어놓고 매일 바라보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마동은 이제 소원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디렉트메시지: 소나무? 확실히 동양의 친구는 멋진 사람이었어. 내 직감은 빗나가지 않아서 나는 지금 더욱 기쁜걸.


디렉트메시지: 그래 소나무 말이야. 여기서는 소나무를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소나무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아. 하지만 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신비로운 생명체야. 게다가 근처에 늘려있는 소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그렇다고 일본산 소나무는 아니다- 소나무가 많은데 한국 금강송이라는 소나무를 심어놓는 거야. 나무가 띠는 빛이 오묘하고 소나무의 몸통이 붓놀림과도 같아. 소피도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겠네. 붓글씨? 혹시 알아?


디렉트메시지: 설마?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전혀 모르겠는걸.


디렉트메시지: 그래 나중에 만나게 되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만약 만나게 된다면 말이지- 집의 정원에 큰 소나무를 심어놓고 하루 종일 어루만지며 관리를 하는 거야. 소나무를 쳐다보며 지낸다면 매일 행복할 거야. 소원이지. 나의 소원. 왜 그런 따위가 소원이 되었을까. 나도 잘 알 수가 없어 소피.


마동은 갑자기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서른 개를 했다. 역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소나무를 잊기 위해서 갑자기 운동을 했을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운동을 하라고 시킨 것일까.


마치 철탑 밑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힘 있게 팔 굽혀 펴기를 했다. 하지만 마동은 왜 팔 굽혀 펴기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스무 개를 하고 다시 열 개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 파트를 순식간에 했다. 턱의 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내려갔다가 팔을 뻗어 힘차게 올라왔다.


디렉트메시지: 저기 소피?


디렉트메시지: 응? 동양의 친구?


디렉트메시지: 나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블랙우드가 생각나지 않아?


디렉트메시지: 동양의 친구, 난 그동안 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어. 직장인들처럼 같은 사람을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 그들은 정말 세상에서 별종의 인간들이야.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나의 친구여. 나는 당신을 꽤 믿어 버렸어. 나 역시 어떻게 당신이라는,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믿어버리게 되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길은 전혀 없어.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 내 마음이 향하는 촉을 믿는 거야. 나에게 철없이 흘러간 시간과 맞먹을 만큼 독선적인 직감이 내재되어 있어. 그리고 그만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경험과 관찰이 있지. 나의 직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와 나이가 되었다는 거야. 감각이 있어. 그것뿐이야. 그 외에는 없어. 동양의 친구.


마동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발현의 꿈틀거림이 포착되었다.




마동은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다. 새벽의 밤공기도 단조롭게 옥상에 내려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의 어둡고 불길한 하늘을 보았다. 마른번개가 불규칙적인 주기로 내리쳤다. 이제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닥쳤을 때는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가 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치누크가 몰고 온 묘한 바람의 흐름을 느꼈던 그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조금씩 변이하고 있었다. 그것이 실로 진정한 변화인지 마동의 본성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난 후 깨어나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록 신체의 상태 변화뿐만 아니라 의식의 변화까지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속도감 있게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식의 본질은 껍질을 벗고 껍질 속의 새로운 살갗의 냄새를 맡았다.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기포를 타고 올라왔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붕괴하고 질척이는 피 냄새도 났다.


어김없이 해가 아침을 점령하면 난 어제보다 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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