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18

by 교관


218.


마동은 허리를 약간 구부렸다. 다리는 옥상의 난간 밖으로 나 있었다. 엉덩이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고 양 손도 옥상의 난간을 위태롭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마동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린아이가 뒤에서 살짝만 밀어도 아파트 밑으로 추락할 것 같은 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들고 온 꿈의 리모델링 작업 때문에 회사에서 연락이 많이 올 것이다. 어쩌면 연락 속에서 최원해 부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지도 모른다. 최원해는 아직 지각 한 번 조퇴 한 번, 결근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회사입장에서는 충성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이제 하루 이틀 뒤에 경찰이 와서 최원해의 실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니 취조를 할 것이다. 눈앞에 그런 광경이 죽 나타났다.


가스층이 두터운 여름밤의 어두운 하늘이 밝았다. 마른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하늘은 기분 나쁘게 더 밝아졌다. 마른번개가 마동의 마음에 어떤 미지의 자극 같은 것을 전해주었다. 마동은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자신의 마음속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질서가 깨져 버리니 외부의 풍경이나 사물,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되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흐리고 꿉꿉하고 그 사이에 밝은 하늘빛이 눈앞에 어울리지 않게 펼쳐졌다.


며칠 만에 아주 뜨거운 무더위가 한반도를 찐 고구마로 만들었다. 열기 가득한 더위가 몰려오기 전, 태풍의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를 한껏 머금고 있는 여름의 새벽하늘이었다. 욕망에 가득한 충혈된 눈처럼 보이는 구름이 하늘 사이사이에 껴있었다. 마동은 들었던 고개를 숙여 아파트의 밑을 바라보았다. 이 새벽에 아직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술에 취했는지 걸음걸이가 완벽함에서 벗어났다. 습한 공기의 암울함은 밤의 세계를 떠나기 싫다는 듯 서로 엉겨 붙어서 불안한 걸음걸이로 걷는 사람들의 숨에 들어차 그들의 불쾌함을 더욱 자극했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어 주었다.


새벽의 단신상들이 모여 오후의 군상을 만들어내고 하나일 때 없었던 힘은 집합으로 하여금 큰 소리가 된다. 비록 불합리성을 지닌 목소리라도 여럿이 떠들어대면 정합성이 되어 버리고 만다. 폭주한 기차처럼 앞으로 끝없이 나가지만 멈추지는 못하는 것이 인간 군상이었다.


마동은 아슬아슬하게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었지만 고층에 대한 공포가 들지 않았다. 그는 고소공포가 심했다. 예전에 마동은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적당히 높은 곳이 아니었다. 고층의 외부가 드러난 곳이었다. 올라가니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과 발바닥에서 이유 없이 땀이 났다. 무엇보다 지상에서 할 수 있었던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고 타인이 되어서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는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리는 이유식을 먹는 아기처럼 힘이 몽땅 빠져나가 서 있기도 불안했다.


옥상 난간에 앉아있는 지금은 그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변이 덕분이었다. 현재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매달려 있어도 상관없었다. 딱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하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대신 또 다른 새로운 두려움이 들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누가 했던 말일까.


또 다른 두려움을 감싸고 있는 가려진 실체는 어렴풋하나 옅은 커튼 뒤의 형체와 같았다. 여름밤의 아파트옥상은 낮 동안 내려받은 복사열과 밤새도록 집집에서 가동하는 에어컨 열기 때문에 달아오른 거대한 두꺼비집처럼 변했다. 짙은 새벽으로 시간이 나아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조여오기 시작했다. 험악하고 음산하고 기분 나쁜 습한 새벽의 공기가 마른번개가 치는 저곳에서 이곳으로 와서 마동의 어깨며 팔다리를 좋지 못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이내 어깨를 쓰다듬더니 습함은 마동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여름밤 대기에 노출되어 있는 피부에 달라붙었다. 얼굴로, 그리고 얼굴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음험함이 습, 하며 빨려 들어왔다.


오토바이 한 대가 처절한 굉음을 내며 아파트단지 밑의 도로를 질주했다. 아파트에 자아를 저당 잡힌 70대 노인이 떠올랐다. 아파트와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노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동은 어린 시절 그 사건 이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적어도 타인보다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고 세포들이 점점 죽어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나면 육체가 쇠퇴하여 그 사이로 틈입해 온 바이러스는 신나게 증식을 한다. 그리하여 고요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게 서서히 오는 경우가 있고 느닷없이 오는 경우가 있다. 가까이 와있지 않던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 죽음을 맞보는 그 몇 초, 몇 분, 몇 시간, 며칠은 깨달음과 환멸이 교착되는 시간이다. 그 외의 감정은 배재하게 되거나 이탈해 버리게 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마동은 그동안 죽음에 다가서는 훈련을 많이 해 왔다. 종교가 없어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에 불만족이나 누리지 못한 부분을 죽어서 천수를 누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죽음이란 삶의 한 부분이다. 소피의 말을 생각했다. 소피는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적어도 마동보다는 훨씬 가까이 다가갔었다. 그렇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녀는 분명히 죽음이 있는 그 너머의 세계가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죽음이 던지는 관념에 대해서 만져보고 느껴보고 왔다. 오늘 죽으면 내일부터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와닿았다. 마동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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