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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1.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45


245.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난 두려움의 그림자가 마동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묶어 버렸다. 95년 일본 도쿄지하철에 뿌려진 사린가스의 공포를 알고 있는 사람과 흡사할 것이다. 군사전시살상용 사린가스를 제조한 옴진리교는 도쿄의 여러 구간의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를 나누어 봉투에 담아서 운반하고 우산의 뾰족한 끝으로 터트렸다. 사린은 휘발성이 강해 공기 중에서 대기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이동을 하며 공기보다 5배 정도 무거워 바닥으로 번져간다.


 무색무취의 액화가스로 말 그대로 인명살상용 신경가스다. 액체의 경우 몸무게 70킬로그램인 성인이 0.7mg 이상 마시면 1, 2분 이내에 사망하게 되고 기체의 경우 공기 중에 농도가 70mg/m3 이상이면 그대로 즉사하는 무서운 독가스이다. 사린가스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나치가 개발해 이란, 이라크전쟁과 이라크 쿠드르족 진압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의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를 마신 사람들은 쓰레기봉투처럼 픽픽 쓰러졌다.


 빈혈처럼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듯하더니 몸에서 기운이 어딘가로 몽땅 빨려나가 버리고 한 발, 두 발걸음을 떼다가 도로 위의 화단에 그대로 맥없이 쓰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영화 속의 장면처럼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구급차가 왔지만 응급처치 방법을 몰랐다. 사람들은 길거리 곳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무서운 가스 때문에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매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초조는 아토피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의 뇌에 암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병명도 불확실하며 가족과 주위사람들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서 괜찮아져야 할 생활이 초조함으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마동은 놓이게 되었다.


 의사가 방을 빠져나가는 순간 초조함이 몸을 덮쳤고 두려움이 되어서 마동을 짓눌렀다. 상식에서 벗어난 두려움을 겪게 되면 코마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식이나 경험에 포함되지 않는 초조함이 생활전반에 진을 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초조함이 자아내는 두려움의 크기는 생각의 한계를 넘어버린다. 인간의 몸은 그런 공포를 이겨낼 수 없어서 병실의 환자처럼 고통스러워한다.


 초조함이란 그런 것이다.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서울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을 스스로 감는 것과 어떠한 힘에 의해서 무력하게 눈이 억지로 감기는 것 사이에는 일종의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성으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떨쳐 내려고 우리는 오래전에 전구를 만들었고 가족을 꾸려 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사에서 마동을 찾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회사는 마동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조직은 개개인을 통제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개개인은 조직에 속한 이상 조직의 이익을 창출해 내야 한다. 마동은 그런 기본적인 틀을 잘 지키며 지금까지 생활을 해왔다. 마동의 기본 틀이 며칠 만에 깨져 버렸다. 앞으로 회사에서 다시 일 할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


 공허한 방 안에서 마동은 소리를 내어 조용히 말을 해 보았다. 소리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방 안에서 방황하다 안타깝게 사라졌다.


 이제 정원이 딸린 집에서 향이 좋은 소나무를 심어놓고 매일매일 쳐다보는 생활도 할 수 없겠지.  

    



 늙은 소피가 한국에 가끔씩 놀러 와서 소나무를 구경한다. 늙은 소피는 남편과 딸 둘을 데리고 나의 집에 휴가를 온다. 딸은 쌍둥이다. 소피를 닮아 아주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다. 소피는 정원에서 늙은 나와 나의 가족과 함께 와인을 즐긴다. 와인에 어울리는 육즙이 좋은 한우를 구워 먹고 있다. 정원 가득히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고 우리들은 와인을 곁들이며 짧은 시간의 행복이지만 불평 없이 만끽한다.


 -미국의 생활은 어때? 소피


 -동양의 멋진 친구, 우리는 잘 지내지. 매년 초대를 해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와인을 연거푸 세잔을 마시고 나니 술기운이 올라온다. 우리들은 이제 늙었다. 오래 전의 젊음은 모두 사라지고 시대는 변했다. 세대는 교체되었다. 각자 어려운 일도 있었다. 몸과 정신의 변이를 거쳐야 했고 성인 영화에 노출을 끊임없이 보이며 타인의 눈초리를 받고 타인을 피해서 다녀야 했다. 대통령은 보호무역인 나라를 비판하면서 우리나라마저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돌려버렸다. 공익사업의 상당한 부분도 민영화를 시켰다. 생필품의 물가는 매년 20원씩 올랐으며 성범죄자들의 사형제도가 생겨났다.


 의미를 지니는 모든 부분이 하나씩 사라져 가거나 또는 생성되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애벌레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각각의 나라에서 가족을 만들었고 세월이 흘러 모두 늙었다. 소피는 일선에서 물러나 캠페인회사에서 일을 했고 앞으로도 죽 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인 스티브와 결혼을 하여 예쁜 쌍둥이 두 딸을 낳았다. 소피는 쌍둥이를 낳을 당시 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기들이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 복용하던 약도 중단했고 쌍둥이를 낳겠다는 일념 하에 목숨을 걸었다. 수술대에 붙어있는 계기판의 수치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소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이들을 낳았다. 또 하나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소피는 아이들을 낳고 스티브를 통해서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했고 나는 매년 여름이면 소피의 가족을 집으로 초대해 휴가를 즐긴다. 우리들의 모습에서 젊음이란 모두 사라졌지만 약간의 여유로움과 안정이 오래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돌아가 봐야 한정된 기능 속에서 그 기능을 이빨이 있는 지렁이가 갉아먹는 소리처럼 소름 돋는 생활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원의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뛰어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행복한 시간이다.


 소피의 가족에게서, 나의 가족에게서 초조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중년의 소피와 나보다 7살이 많은 스티브는 한우의 맛을 느끼며 와인 잔을 부딪쳤다. 나는 연거푸 와인을 몇 잔이나 마셨다. 입안이 꺼끌꺼끌하다. 소피는 한우가 든 접시와 와인 잔을 들고 나의 아내 옆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와인을 많이 마셨는지 조금 어지럽다. 아내의 얼굴이 가물가물 거린다. 아내의 채취가 빠져나와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어이없게도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다. 소피가 어느새 옆으로 와서 와인 잔에 와인을 부어주었다.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지러워 양손의 검지로 관자놀이를 세게 누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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