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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0.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44


244.


 “우리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그 문명이었고 저도 그렇고 마동 씨도 문명 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연극이 필요로 하는 각각의 요소 같은 것입니다.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배경이 될 수도 있고 소품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눈에 비치는 고요한 물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이들도 같이 섞여 공생을 하고 있습니다. 섞여서 공생하는 이질적인 존재는 우리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습니다. 성폭력범을 외모로 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기생충 역시 눈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살인자를 옷 입는 모양새로 찾아낼 수는 없어요. 도로 밑의 지하에 내려가면 하수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존재의 실체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본다고 생각하세요? 아주 적은 양과 작은 부분만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시각에 대부분 의존을 하죠. 하지만 시각을 넘어선 다른 감각으로 생존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많은 존재적 증명들이 서로의 얽히고설킨 꽈리처럼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생태계는 인간에 의해서 점점 파괴되어 갑니다. 지적인 존재라고 불리는 인간이 어째서 파괴본능이 가장 강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오랜 세월을 거슬러 내려오는 동안 법규처럼 확고해진 것입니다.


 의사는 마동에게 두 시간정도 쉬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마동은 회사일이 바빠서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한 번 보이고 방을 나갔다. 암전이 걷힌 방은 다시 온화한 빛으로 돌아왔다. 의사가 보였던 웃음 속에는 회사에 가봐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모습을 유지한 채 얼굴표정은 방에 남아서 의사가 나갔음에도 한참을 떠돌다가 사라졌다. 의사가 나가고 나니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불안한 구체성을 띠며 마동의 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깨에 올라탔다. 그것은 초조함이었다. 쓸쓸함이었다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조함은 심장을 누르고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함으로 두려움도 함께 소멸한다. 사랑을 시작함과 동시에 두려움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사랑은 초조함을 부른다.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종식되어야 초조함도 끝이 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이어 붙여 봐야 고작 십 년 정도뿐이다. 어떤 세대든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해가는 긴 항해를 하는 것뿐이다. 그 항해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는 행복은 항구에 배가 정박하고 잠시 쉴 때뿐이다. 오로지 거친 파도와 싸우며 멀미를 하고 절인생선만 먹어야 하고 사고에 늘 노출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 속에서 닥쳐오는 초조함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에 벌벌 떨며 심약해지는 인간의 다른 마음과 부딪혀 상처를 입는다.


 초조함은 언제부터 인간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걸까.


 마동은 초조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늘 주위에 도사리고 있던 초조함에서 벗어나는 훈련과 타협, 태권도 1장을 수련하듯이, 사격을 연습하듯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초조함을 피해 가려고 하지 않고 맞이하는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실체가 전혀 없는 초조함에 대한 준비는 너무나 미비했다. 초조함에 대한 방어가 뚫리는 순간 그것은 굳센 두려움으로 변질되었다.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병이 몸을 갉아먹는 두려움.

 우연한 사고에 의해 극복하지 못할 몸 상태가 되는 두려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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