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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9.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43


243.


  여기서 웃음이 더 사라진다면 개성이 말살된 얼굴이 되고 말 것이다. 그저 백화점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마네킹의 얼굴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슬픈 마네킹’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슬픈 마네킹의 모습을 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동은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의사 선생님은 어째서 그런 저를 알아보셨는지? 처음부터 알고 계신 건지……. 선생님께서는 혹시 형성변이자를 알고 계십니까?”


 자신의 팔을 접었다 폈다 하는 의사를 마동은 보았다. 당신의 말이 무슨 의미지? 하는 표정으로 의사는 대답을 대신했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는 잘생겼다. 티브이화면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서 벗어난 얼굴이다. 그저 잘 생겼다는 범주를 뛰어넘었다.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얼굴일지도 몰랐다. 의사의 잘 생긴 얼굴은 신의 영역 속에 있는 얼굴 같았다. 그렇지만 의사는 인간적이다. 모든 판단은 냉철하게 하지만 마음의 한 부분은 따뜻함이 서려있다고 의사의 얼굴에 쓰여있었다. 따뜻함이 아우르는 의사의 인간성에 사람들이 매료되어서 꾸준하게 의사를 찾아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는 마동을 보며 웃었다.

 그래, 웃음이란 이렇게 얼굴에 나타나야 한다.


 “무엇 때문에 당신 몸에 변이가 일어나는지 저도 자세하게 모릅니다. 허나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금 이 초고도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이를 합니다. 그것이 눈에 띄는 변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죠.”


 “마동 씨,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요. 눈에 띄게 변이 하는 쪽일까요? 그렇지 않은 쪽일까요. 눈에 드러나지 않게 변이를 하는 인간은 무서워져 갑니다. 옆의 누군가를 밟아야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사람들을 점점 변이 시킵니다. 타인의 사정이나 친밀도는 상관하지 않죠. 무섭습니다. 마치 꽃과 같아요.”


 “꽃이요?”


 “네, 들판과 거리에 피는 ‘꽃’ 말입니다.”


 의사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동이 여자였다면 분명히 의사에게 매료되어서 저녁약속을 잡았을 것이다.


 “꽃은 겨울에 사라졌다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핍니다. 그것에 이변이 없어요. 불변입니다. 매년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고 시간이 되면 말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은 나이가 들어 서서히 늙어가죠. 아프고, 병들고, 때로는 삶을 고통 속에서 허덕입니다. 하지만 꽃은 그런 인간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때가 되면 처음처럼 마치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하게 예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죽어 가지만 꽃은 생생하게 피어납니다. 필멸하는 하는 인간에 비해 피고 지는 것으로 꽃은 영원성을 유지합니다.”


 분주하던 의사의 손놀림이 멈추었다. 의사는 마동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의사의 손바닥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전이되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의사의 손바닥이 말을 하는 건지 변이를 피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마동의 어깨를 정확하게 3번 두드렸고 손을 치웠다. 그리고 결심한 듯 의사의 얼굴이 마동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는 의사의 얼굴은 분명히 여자들이 반할만한 얼굴이었다. 의사는 자신의 눈을 마동에게 아이컨택 시켰다. 의사의 사려 깊은 두 눈 속에 점점 깊이가 사라져 갔다. 방금까지의 의사의 눈빛이 아니었다. 마동은 지금 의사의 두 눈 같은 눈동자를 본 적이 있었다. 흔한 기시감이 아니었다. 사라 발렌샤 연시엔의 눈동자에서 본 적이 있는 무깊이의 눈동자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이제 흐려져서 떠오르지 않았지만 깊이를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그녀의 세계가 의사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마동은 의사의 눈동자 속에서 밤바다 같은 거울 속에 비친 깊이가 없는 눈을 떠올렸다. 깊이가 사라진 거울 속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순간 모든 공간이 암전 되었다. 암흑으로 전이가 되는 풍경으로 변했다. 마동은 거울을 통해서 바라본 눈동자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을 의사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안의 모든 사물이 정지해 버리고 공기가 쑤욱하며 팽창하더니 엷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거울을 바라볼 때처럼 암전이 되었다. 암순응도 소용없는 암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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