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304.
“전화상으로는 할 이야기가 아니지. 그렇지만 말해주겠소. 우리는 우리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지.”
목소리를 다듬는 울림이 들렸다.
“정부는 당신이 상관에게 스티머회선으로 그 작업분량을 보낸 것도 다 알고 있소.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 작업을 한 것은 정확히 당신이 한 것인지 제3의 인물이 한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소. 당신 회사 직원들의 통장에 그 작업을 의뢰한 고객에게서 받은 돈이 분배되어서 차곡차곡 들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다시 말하지만 정부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라 감시에 들어간 대상의 일거수일투족, 어떤 대상은 그 생각까지 알아낼 수 있지. 하지만 어느 선까지는 정부에서 눈을 감아주오. 인간의 삶이란 정말 다양하지 그건 여러 책에서도 나오지만 태어나는 방법은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없지만 우아하게 죽을 수도 있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 죽음에 다가가는 방법은 본인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 행복의 종류는 하나지만 불행에 대해서는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는 건 많은 곳에서 이미 나와 있는 말이지. 도스토옙스키의 말인가?” 누구의 말인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귀결은 죽음에 다가서고 나면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오. 정부는 그런 인간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유지시키는 역할도 하지. 착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인간이 살아가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혼란스러워질 뿐이지. 그건 당신도 알 거야. 다양하게 살아가는 착각이 들 수 있도록 정부도 크게 관여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능구렁이처럼 넘어가지. 정부도 자금이 필요하고 돈이라는 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뒷거래되는 돈이라 하더라도 당신네 회사와 직원들에게 분배되는 건 우리도 건드리지 않아. 돈은 기름과 같아서 인간의 삶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지.”
그는 변하지 않는 음역의 톤과 목소리를 가지고 높임말과 반말이 섞인 말투를 써가며 말을 했다.
“이런 내용을 나에게 말해줘도 되는 겁니까?”
“그렇소. 당신에게는 해도 괜찮은 내용이야.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방법을 우리는 훈련을 받았소. 훈련은 혹독하고 힘들었지. 그걸 견뎌낼 자들만이 정부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오.” 스미스요원은 마동의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 맥주 한 모금 마시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신 회사는 이번 작업의 주축인 당신이 회사에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다른 직원도 나오지 않아서 고심하는 모습도 있더군. 그런데 당신도 이미 느꼈겠지만 그 직원은 이제 회사에 나올 가망성은 제로에 가깝지.” 그는 무섭게 말을 끝맺었다. 침묵이 올곧게 흘렀다. 수화기너머로 전해지는 침묵은 유난히 무겁고 색이 짙었다. 몸이 빠져 버린다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질척이고 질퍽한 종류의 침묵이었다.
“정부는 그 직원의 행방에 관심이 많았네. 그 사람은 이 세계에서 사라졌소. 완벽하게 사라졌지. 내가 말했듯, 그 직원은 누락되었소.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완전하게 말이오. 형사들이 그의 행방을 찾고 있지만 실종사로 마무리가 될 것이오.”
또다시 침묵.
침묵 속에서 그가 이어갈 말을 조리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마동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최대한 간결한 단어와 문장을 동원해서 마동에게 보다 정확하고 알기 쉽게 말하려 하고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부는 당신에 대한 감사를 그만두라고 했소. 윗선에서 직통으로 나에게 전달이 왔소. 이례적인 일이지. 언제나 절차가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절차 없이 곧바로 나에게 전달이 되었지. 당신에 대한 감시는 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오. 그 이유는 나도 모르오.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뿐이니까. 다만 정부는 마른번개의 행방을 파악했고 그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소. 나는 잘 모르지만 당신은 그들과 알게 모르게 깊게 관여하고 있는 듯해. 정부의 윗선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들과 접촉을 해오고 있소. 그들이 무엇 때문에 긴 시간 지켜온 평화와 안식을 깨트리고 나오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내미는 타협을 그들이 거부하면 그들 역시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는 못하오. 그렇게 되면 그들과 부득이한 마찰이 일어나겠지. 물론 이곳은 크나큰 공황상태가 될 것이오. 중요한 건 그 중심에 당신이 있다고 하더군. 당신이 지금 하고자 하는 대로 놔둔다면 그들도, 그리고 정부와 우리도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이지. 당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관여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정부의 윗선에서 판단이 선 모양이야. 고마동 씨, 당신이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대로 그냥 놔두라는 전달만 받았을 뿐이오.”
그의 말이 끝나고 아주 잠시 동안의 시간을 가졌다가 수화기는 그대로 끊겼다. 마동은 어쩐지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마음의 앙금을 더 크게 만들어냈다.
웅웅웅 웅웅웅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