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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마동의 머릿속으로 또다시 사람들의 의식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눈 옆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매일 하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안정을 얻으려 했다. 반복은 지겨움과 늘어짐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안온감을 지니게 했다. 단순한 반복에서 인간은 시스템을 창출하는 것이다. 세계의 곳곳에서 땅이 꺼지고 총성이 울리고 비행기가 추락했지만, 917번의 버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시간에 정류장에 도착하고 은행은 같은 시간에 문을 연다. 각 학교의 수업은 정각에 시작하고, 오징어배달부는 여름의 사나운 비가 몰아쳐도 그 시각에 오징어전문 활어횟집에 오징어를 배달한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들도 시간이 되면 티브이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본다.
딩동.
형사들이 찾아왔다. 두 명이었다. 뒤의 남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마동은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보다 훨씬 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형사는 30대 초반의 유도선수나 격투기선수 같은 모습이었다. 스포츠머리의 인상이 험악했고 건장한 남자였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이 베테랑 형사 같았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고 늙어 보여서 나이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수염이 잘 깎인 부분과 덜 깎인 부분이 같은 영역 속에 혼재했다. 그 모습은 깨끗한 도심지가 밤이 되면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수염을 깎은 듯 뒤죽박죽이었고 목젖 위로는 아예 수염을 깎지 않아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이지만 형사들의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흘러 수염의 숲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한 여름이라는 계절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름에는 움직이면 땀이 흐른다. 류 형사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이미 땀이 흐르고 난 후 말라버린 자국도 있었다.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짤막한 인사에 빈틈없는 목소리가 서려있었다. 신분증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마동은 거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커튼을 뚫지 못한 태양의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신나게 현관문을 열고 형사들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왔다. 실내에서 보니 류 형사와 같이 온 후배형사는 덩치가 산처럼 커 보였다. 눈은 아직 잠에서 덜 깨 부기가 빠지지 않았지만 정의와 열의에 불타는 신참형사의 모습, 그것이었다.
“들어오시죠.” 마동은 그들을 소파로 안내했다. 신발을 벗는 순간 묘한 냄새가 났고 류 형사가 발을 디딘 거실바닥에서는 며칠 씻지 못한 발바닥의 냄새가 딱 붙어 버렸다. 정작 본인들은 냄새를 맡지 못했다.
“어제는 연락이 되지 않아서 회사를 찾아갔는데 회사에도 나오지 않으셨더군요. 회사에서도 연락 없이 결근을 하셔서 걱정이 심하던데…… 오늘은?”
마동은 회사에 연락을 했다고 했다. 류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오래되고 낡은 수첩을 꺼냈다. 겉표지에 내무부가 아닌 법무부소속의 마크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반면에 체격이 좋은 젊은 형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류 형사는 조사한 내용을 낡은 수첩에 옮겨 적고, 신참형사는 모바일 폰의 메모지에 조사내용을 기입하는 모양이었다. 굵고 단단한 음성으로 신참형사는 마동에게 집안을 좀 촬영해도 되냐고 물었고 마동은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신참형사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류 형사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마동을 관찰했다. 마동은 알았다며 촬영을 허락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 굵은 손가락으로 찰칵 거리며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에 메모를 하는 소리가 이질감 있게 들렸다.
“회사에서는 당신이 상당히 아프다고 했습니다. 회사원들 말로는 외모가 변할 만큼 아프다고 다들 알고 있던데 말이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실제로 보니 회사에서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지…….”
“하루 만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기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마동은 안경테를 올리며 말했다. 류 형사는 그 손짓을 놓치지 않고 눈으로 담았다.
“안경에는 색이 들어가 있군요. 실내에서 조금 어두워 보이겠습니다. 평소에는 안경을 쓰지 않으셨군요.” 류 형사는 수첩에 메모를 하면서 말을 했다.
“아닙니다. 평소에 안경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늘 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부터 새로운 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안경을 바꿨어요. 며칠 만에 시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눈이 너무 부십니다. 빛에 노출이 되면 눈이 아파서 눈을 뜨고 있기가 힘이 들더군요. 자외선은 무섭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마동은 다시 안경테를 올리며 말했다. 류 형사는 메모를 하던 볼펜 끝을 입에 물었다. 볼펜 끝의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볼펜 끝을 물었을까.
“아시겠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최원해라는 사람이 실종되었습니다. 솔직히 실종신고를 하기에는 아직 모자라는 부분이 있지만 분명 실종된 것입니다. 어이 이봐, 이 말은 적지 마.” 류 형사는 신참형사에게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은 메모를 하지 말라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