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1

312

by 교관


312.


“저 녀석 경찰이 안 됐으면 최고의 유도선수가 되었을 건데 말이죠. 유도선수로 꽤 전도유망했습니다. 태릉에서 제일 기대를 하는 선수였죠. 그놈의 사고만 아니면 말이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이런 고달픈 형사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꾸준하게 연금이 나온다는 것은 큰 희망입니다. 세상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법이죠. 특히 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난다니까요.” 류 형사는 마치 신참형사가 아직 있는 듯, 후배가 앉았던 자리를 보며 그의 흔적을 떠올렸다.


“고마동 씨, 혹시 어린 시절에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까?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고추를 만진다거나 윗옷을 벗겨서 가슴을 보여줘야 한다거나,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마동은 없다고 했다. 류 형사는 마동에게 물을 한 잔만 달라고 했다. 마동은 식수대에서 물을 한 컵 받아서 류 형사에게 건네줬다. 한 모금 마시고 시원한 물은 없냐고 마동에게 물었고 마동은 없다고 했다. “여름에도 시원한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긴 합니다만…….” 류 형사는 볼펜을 입에 물었다.


“당신의 기록을 조사했습니다. 우리들은 용의자가 졸업한 학교나, 용의자가 어디에 살았었나. 이런 것쯤은 조사가 빠르고 쉽게 가능합니다. 마동 씨는 실종된 최원해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그래서 경찰들은 모든 면에서 당신을 조사해야 했습니다. 고마동 씨의 이력 중에 고등학교 때 기억이 상실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 당시를 기억나는 대로 말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때의 이야기가 사건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동은 는개에게 들은 이야기를 빼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이전에 기억하는 부분과 알고 있는 부분을 류 형사에게 이야기했다. 류 형사는 마동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지 않았다. 볼펜을 입에 물고 진지하게 마동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는 동안 마동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니까 당시에 어떤 일로 병원에 입원했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군요. 그때 마동 씨가 그곳에 간 걸 본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말 기이한 일입니다. 마동 씨는 자신의 집과 학교와도 멀리 떨어진 그곳에 왜 가게 되었을까. 분명 무슨 계기가 있었기에 그곳에 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동 씨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제 그 지방의 후배형사에게 어머니를 좀 만나고 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뭐랄까……” 류 형사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적당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어딘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니는 저와도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그건 서로 간의 문제에 의해서 대화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입원했다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어머니지만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어요. 외적인 모습이 변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마음의 변화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본래 지니고 있는 의식의 변경이라고 해야 할까. 내부의 어떤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버린 거 같아요. 어머니는 이후에 한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습관은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류 형사가 물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계기가 되었다는데 정신과치료도 소용이 없더군요.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정신과치료는 중단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서 하루하루를 잃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류 형사는 마동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우물에 빠져들어 가는 것처럼 생각에 잠시 잠겼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마나 많이 생각해 본 말인가. 톨스토이가 말했다. 행복의 종류는 한 가지지만 불행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라고. 류 형사도 자신이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싶었다.


“형사님은 행복하세요? 지금?”


마동의 질문에 류 형사는 볼펜 끝을 깨물고 말았다.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던 볼펜 끝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아닙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말해드릴 수 있겠군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들뿐인데 이것 하나라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류 형사는 또 이물질이 잔뜩 들어간 호탕한 웃음을 크게 내뱉었다.


“마동 씨가 고등학교시절 기억을 잃어버린 그때, 그때에도 실종사건이 있었습니다. 마동 씨가 왜 그곳에 갔는지 그리고 마동 씨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 당시에 사채업자 3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본 목격자가 없었습니다. 최원해가 사라진 것처럼 그들의 실종기록을 보면 그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네 명이 사라졌는데 그중 한 명이 사채업자의 대표 격인데 그 사람도 성폭행전과가 있었습니다. 어쩐지 지금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류 형사의 물음에 마동은 가만히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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